그 어린 나이에도 인형이 서 있는 것 같다고 느꼈다.
뽀얗고 예쁘고 표정 없는 인형.
말도 못 하고 웃지도 울지도 않고 가끔 눈동자만 도로록 굴리는 인형.
내 눈을 똑바로 볼 수조차 없는 너는 어쩌면 마녀가 아니었을까.
그러지 않고서야 이런 지독한 저주에 걸릴 리가 없을 테니까.
한 사람만 이토록 원한다는 게 맞는 건가.
우진은 혀를 뒤집어 아랫입술을 진득하게 쓸어내렸다.
목이 바싹 마르고 갈증이 났다.
나만 이러는 건 불공평하다고 여기면서도,
채워지지 않는 이 괴로운 갈증을 도미와 나누고 싶지 않았다.
너만 보면 그래, 내가.
널 사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어져.
***
“네가 하라는 거 다 할게. 죽으라면 죽는시늉이라도 할게.”
“불공평한데.”
우진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갈라져 있었다.
“난 네가 죽으라면 진짜 죽을 준비가 되어 있는데.”
나직한 목소리가 도미에게만 속삭이는 것처럼 낮게 울렸다.
“넌 시늉밖에 못 해?”
비웃는 입술에서 흘러나온 힘 빠진 저음이 따지듯이 묻는다.
도미의 등줄기를 따라 소름이 작게 오소소 돋았다.
맞아. 난 시늉밖에 못 해.
널 미치게 사랑해도, 죽을 수는 없어.
나는 내가 제일 중요하니까.
이게, 너와 나의 차이지.
노력하지 않아도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이우진.
서도미의 하나뿐인 가족, 서나래의 사랑까지 독차지하는 이우진.
그런 그가 원하는 단 한 명, 서도미.
지독하게 얽힌 사랑의 족쇄에서는 어느 누가 망가지기 전까지는 벗어날 수 없었다.
“어떻게 내 전부를 빼앗을 수가 있어, 다른 사람도 아닌 네가, 어떻게……!”
“그래서 내가 떠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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