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매화 필 적에, 나 그대를 만나뵈러 오리니[GL][단행본]

홍매화 필 적에, 나 그대를 만나뵈러 오리니

추운 겨울 밤꽃이 피어나는 모두가 잠든 밤, ‘나’의 조국은 멸망했다.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영원히, 영원히 속세에서 자취를 감춘 망국을 찾는 이는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 나에겐 두 번 다시 볕 들 날이 존재하지 않을 것 같았건만….
연오, 그 의문모를 사내가 내 눈앞에 나타나고는 모든 것이 달라졌다.
자신을 낳고 이른 나이에 별세한 어미를 대신해 왕위에 오른 연오. 그는 오 씨 왕조의 유일한 적자였다. 대대손손 여자아이만이 세상 밖의 빛을 보던 왕조에 유일하게 남은 군주, 이 생에 유일한 왕. 그리고, 나의 조국을 망가트린 철천지원수의 유일한 후손. ‘나’는 그를 하루빨리 죽여 없애야만 한다.
하나, 도성에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우리 세상에 난 유일한 왕은 사람의 심장을 빼내 먹어야 살 수 있는 기묘한 병증에 시달리고 있어, 매일 하나 이상의 생명을 그에게 헌상해야만 한다는데….
그리고.
“나는 그대라는 유일의 생을 만나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당신은 어떤가요, 연화?”
자꾸만 자신에게 말을 건네오는 의문 모를 소녀 월애는, 유 씨 왕조에 남은 유일한 ‘공주’로서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 못내 못마땅해 보인다.
“나를 데리고, 어디로든 도망쳐줘요. 당신이 바라는 곳 그 어디라도. 나는 당신을 따라갈 테니. 어서, 어디 어느 곳이라도 도망쳐줘.”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자신의 마음을 헤집어오는 월애의 지독한 구애는 과연 언제쯤 끝이 날는지, 아직 세상을 전부 깨우치지 못한 열다섯 소녀로서는 도저히 알 길이 없다.
하지만, 나는 반드시 이 모든 증오의 연쇄를 내 대에서 끊어내야만 한다.
“나는 우리 세상의 모든 끝나가는 세월의 끝에 남아 너를 기다릴 테니, 너는 너의 시간에 영원히 남아 살아가거라, 나의 아름다운 홍적매, 나의 유일한 생, 나의 연화야.”
과연, 이 모든 시작의 끝이 불러올 파멸의 끝은 나를 온전히 자유롭게 풀어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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