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급히 삽니다 [단행본]

피아노 급히 삽니다

눈 감고도 접을 수 있는 종이비행기를 빠르게 완성하고는 날릴 듯이 높이 들었다. 손을 앞뒤로 움직이며 바람을 만들자 날개가 조금 펄럭였다. 때마침 바람이 불어왔고, 더 큰 폭으로 움직이는 순간 수리는 비행기를 놓쳐 버렸다.
“아.”
막을 새도 없이 연두색 비행기가 바람을 가르며 날아갔다. 계획에 없던 비행에 놀란 수리는 벌떡 일어나 비행기가 날아가는 궤적을 바라보았다. 저만치 날아가던 비행기가 힘을 잃고 천천히 추락하기 시작했다.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면서도 전진하던 비행기가 떨어진 건 어느 낯선 구두 앞에서였다.
난데없이 나타난 비행기가 발치에 떨어지자 정장 차림의 남자가 우뚝 멈춰 섰다. 걸음을 막은 게 종이비행기인 경우는 난생처음일 터. 종이비행기를 날려서 누군가를 멈춰 세운 건 수리 역시 처음이었다.
이어폰에서는 여전히 피아노 연주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비행기를 집어 든 남자가 다가오는 동안 이름 모를 피아니스트가 마지막 악장을 연주했다. 가로등 아래, 벤치 앞에 선 수리는 가까이 다가온 키 큰 남자를 올려다보며 눈을 크게 떴다.
“안녕하세요.”
남자가 처음처럼 인사했다. 수리를 알아본 그의 입가에는 장난스러운 웃음이 걸려 있었다. 수리는 이어폰을 빼며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남자가 종이비행기를 건네며 웃었다.
“왜 나한테 비행기 날렸어요?”
피아노를 닮은 여자와 피아노를 수리하는 남자.
수수께끼를 내고 힌트를 주는 만남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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