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네이버 지상최대공모전 로맨스 수상작>
“지금 곤란한 상황입니까.”
훑어 내리는 시선엔 금세 수긍의 빛이 떠올랐다. 그 눈빛을 따라서 머리 위로 손을 얹은 수현이 부스스해진 머리를 쓸어 넘겼다. 오면서 아무런 감각이 없던 팔이 남자의 시선에 베인 듯 쓰라렸다.
“말 안 해도…… 알 것 같네요.”
그때 쩔걱이며 문고리가 돌아가는 게 수현의 눈에 들어왔다. 문이 열리고 있다는 걸 감지한 순간, 흠칫 커진 눈앞으로 성큼 걸어온 남자가 문을 등진 채 상체를 숙였다.
“이제 안전합니까?”
그는 수현의 입술, 바로 위에서 제 입술을 멈추었다. 눈동자 표면 위로 남자의 얼굴이 와 닿았다. 투명하게 비치는 갈색 눈동자가 팽창했다.
구두를 쥔 손에 바짝, 힘이 들어갔다. 눈앞에서 비치는 검은 눈동자가 생경했다. 어둠에 반사된 빛이 아니라 남자가 가진 본래의 색이었다. 깊숙이 다가온 시선이 칼날처럼 선명했다.
“아니면.”
남자는 나머지 한 팔을 옆으로 뻗어 들썩이던 문을 탁, 소리 나게 닫아 버리더니 수현을 내려다봤다.
“더 위험해진 것 같아요?”
*
언젠가부터 비 내리는 날이 무섭지 않았다.
당신과 함께했던 순간들이 생각나서.
당신이, 내 앞에 나타나 줘서
난 처음으로 살아 있는 것 같았어.
다시 만날 것처럼, 잘 지내
다신 만나지 못해도, 안녕
처음이었다.
누군가의 시간을 모두 내게로
묶어 둘 수 있기를 바란 것은.
제한 속도 360km는 가뿐하게 넘기는 여자,
F1 카레이서 유수현.
“신경 끄고, 그쪽이 가야 할 길만 가.”
죽으면 이 악몽이 끝날까.
위험한 경기를 했던 수현은
누군가를 마음에 담으면서 처음으로 겁났다.
이제는 정말 살고 싶어졌으니까.
제한속도 60km를 절대 넘기지 않는 남자,
텐션 팀의 창단주 조한영.
“유수현 씨가, 죽든 말든 나랑 상관없는데,
경기는 끝까지 마쳐요.”
처음엔 죽음을 겁내지 않은 선수여서 좋았다.
이용 가치 있었으니까.
너 하나 버리면, 고지는 눈앞인데 전부를 버려도 마지막까지 너를 붙잡고 있으면 어쩌나. 비웃던 같잖은 마음이 내 목을 틀어쥐고 있을 줄이야.
“내 계획을 어디까지 망칠 작정이야.”
귓가를 베어 물듯 도톰한 입술이 수현의 귓바퀴로 차갑게 스쳤다.
“날 놓지 못하는 건 당신이야.”
“목깃을 당기랬더니 목줄을 당기네, 네가.”
끊임없이, 몇 번이고 벗기고 싶었다.
당신의 완벽한 가면을.
너의 무자비한 상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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