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의 문이 열리며 한 남자가 안으로 들어섰다. 서래는 입구에 서서 실내를 느리게 훑어보고 있던 남자와 눈이 딱 마주쳤다. 한 눈에 봐도 이런 촌구석에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거기다 그 싸한 표정. 남자의 눈빛은 그가 현재 느끼고 있는 기분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노골적인 무시. 한 마디로 눈에 보이는 모든 게 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저건 또 뭐야? 제가 뭔데 저런 표정으로 우릴 쳐다보는 거지? 보나마나 어떤 사연으로 잠시 이 마을에 들른 외지인일 것이다. 저런 외지인들을 다루는 데는 이미 이골이 난 서래였다. 서래가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눈을 부릅뜨려는 찰라, 먼저 선수를 치고 나온 건 은영이었다. “어서 오세요.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남자는 은영의 친절마저도 전혀 반갑지 않은 듯 시큰둥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여긴 ATM 같은 것도 없나요?” 가까이에서 본 남자의 외모는 멀리서 봤을 때보다 더 비현실적이었다. 잡티 하나 없는 매끈한 피부와 섬세한 이목구비, 길고 호리호리한 몸매.... 이 시골마을에서는 여자들 중에서도 이런 미모를 찾기가 힘들었다. “네, 고객님. 아쉽게도 ATM은 없습니다. 대신 통장이나 신분증이 있으시면 창구에서 인출이 가능하십니다.”“통장은 없고 카드만 있는데 이걸로도 가능한가요?”“그 카드로 현금을 인출하시려면 읍내까지 가셔야 해요.” 읍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남자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렇게 인상을 팍 찌푸렸는데도 못나지기는커녕 오히려 잘생긴 이목구비가 더 강조된다는 게 참 신기했다. 두 사람 앞에서 한동안 인상을 찡그리고 있던 남자는 앞에 있는 두 여자를 싹 무시하고 돌아섰다. 저 싸가지 좀 보소. 내 그럴 줄 알았지. 처음 들어올 때부터 인상이 아주 안 좋더라니. 생긴 건 아주 멀쩡한데 인성이 아주 바닥이야.“나 저 사람 누군지 알아요. 저 사람 있잖아요, 저 마을 제일 안쪽에 있는 별장, 그 별장집 아들이에요. 왜 하필이면 이런 날 마주친 거야? 이럴 줄 알았으면 화장이라도 좀 하고 있는 건데.” 이 마을에 서울 유명한 재벌가의 회장님이 지어놓은 별장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화장은 해서 뭐하게? 그런다고 뭐 저런 사람들이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관심이라도 가질 줄 알아?”“그야 또 모르죠. 사랑은 어디서 어떻게 시작될지 아무도 모르는 거잖아요. 혹시 알아요? 제가 또 그런 신데렐라 스토리의 주인공이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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