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회장님. 여기서 임종 치르게 할 거야.”
조용한 시골 동네 청람군에 대기업 회장님이 내려왔다.
“수현아. 나 도와서 회장님 수발들어. 가끔 섬망 증상 오면 딸 노릇도 해 드리고. 비위 맞춰 주면 아쉽지 않을 만큼 챙겨 줄게.”
가진 건 오억 원의 빚밖에 없는 고학생 신분. 시궁창 같은 현실에 나는 이모의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다.
“할아버지, 하나뿐인 손자 왔습니다.”
하지만 강태건.
오만으로 무장한 남자의 등장으로 계획은 큰 장벽을 맞이한다.
강태건은 시한부 회장님을 모시고 서울로 올라가야 했고, 나는 회장님을 하루라도 더 머무르게 도와야 하는 사람이었으니까.
그 팽팽한 대립 가운데, 강태건은 불쑥불쑥 내게 선을 넘어온다.
“남자가 많네요. 동갑에, 연하에. 근데 오빠는 없어요?”
“……없어요.”
“그럼 나는 어때요? 태권도 잘하고 힘센 오빠는 안 필요한가.”
“죄송한데 저 오빠라는 호칭 별로 안 좋아해요.”
“그렇다고 언니는 될 수는 없잖아. 있는 걸 없다고 할 수도 없고.”
대개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으로.
“인생 망한 거 객관화가 안 되나 보네. 쉬운 길을 왜 이리 어렵게 갈까. 뭐가 그리 특별해서.”
어떤 날은 무례한 말을 일삼는 시정잡배처럼 굴더니.
“은인한테 빚을 갚아야 할 것 같아서. 돈 아니면 몸을 줄까 하는데, 뭐가 더 당겨요? 물론 원하면 둘 다 줄 수 있고.”
“나 놓치지 말아요. 복숭아처럼 달게 굴어 줄 테니까.”
은혜 갚는 까치 역할에, 지고지순한 미친놈까지. 자꾸만 뜨겁게 저를 조여 온다.
청람군의 겨울을, 끈적이는 여름으로 바꾸는 질 나쁜 이 남자.
그는 내게 천국일까, 지옥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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