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제 부부 [독점]

시간제 부부

저녁 8시에서 아침 8시까지. 감정 수당 지급.
“대리운전?”
2월 말, 겨울의 끝자락에 다인은 남자를 다시 만났다.
자신의 첫사랑이자 오랜 연인이었던 남자, 강서준을.
“박다인 오랜만이네.”
굳게 다물고 있을 때면 말 붙이기도 어렵게 싸늘한 얼굴.
심사가 불편할 때면 올라가는 오른쪽 눈썹까지.
하나도 변하지 않았지만 조금 더 남자다워지기는 했다.
나를 보는 네 눈. 너를 보며 두근거렸던 나.
그러나 그런 착각도 잠시였다.
“대리운전 하러 왔으면 운전을 해야지. 여기 차 키.”
대리운전 기사와 손님의 만남.
우연은 그대로 끝인 줄 알았다.
“결혼할래?”
불쑥 나타나 결혼 제안을 하는 강서준만 아니었다면.
“뭐? 뭘 해?”
“석 달 열흘짜리 계약이야. 결혼하자. 100일 지나면 이혼하고.”
무슨 신제품 계약이라도 하자고 하는 것처럼 무미건조한 비즈니스 태도였다.
“넌 돈 필요하고 난 석 달 열흘 아내 노릇 할 여자가 필요한데. 생판 남보다는 낫잖아. 우리 궁합도 잘 맞았고.”
돈. 우리 사이에 오가기에는 너무도 메마른 단어.
그런데도 그 돈에 반응하게 되는 상황이 지독하게 무겁다.
돈, 그리고 강서준. 결국 돈과 미련.
못 할 게 뭐 있어? 자존심은 좀 상하지만.
아니지, 내가 왜 자존심이 상해? 찬 건 내가 찼는데.
“이거야, 내 요구 조건. 이행 시간은 저녁 8시부터 아침 8시까지. 주말에는 초과 수당 지급. 그리고 상처받으면 돈으로 보상한다.”
저녁 8시에서 아침 8시까지. 감정 수당 지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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