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따위 없는 결혼이었다.
무너져가는 가문을 위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팔려 가듯 도착한 영지, 아이펠은 내게 편안한 집이 되어주었다.
남편, 지크프리트는 내게 누군가를 사랑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그랬던 영지를 내 손으로 망가트렸다. 그랬던 남편을 내 손으로 죽였다.
그 죗값을 치르는 날, 목만 남은 나를 향해 언니는 웃었다.
‘고마워, 날 위해 죽어 줘서.’
모든 게 언니의 계획이었다는 것을 알아챈 순간에는 이미 늦어버렸다.
다음에 눈을 떴을 때는 지옥에 떨어져 있을 테니까. 이제 다시는 그를 볼 수 없을 테니까.
분명 그럴 터였는데.
과거로 돌아와 버렸다. 지크프리트와 결혼해 아이펠로 떠나는 그날로.
그러니 그를 구해야 했다.
나의 가문, 리샤르의 족적을 그에게서 완전히 지워야만 했다.
그리고 그에게 새로운 인생을 선사할 것이다.
내가 없는, 자유로운 삶을.
그런데 어째서일까.
“제발 부탁입니다.”
이번 생에는 차갑기만 했던 그가 갑자기 내게 매달려왔다.
“……떠나지 말아요.”
세상을 잃은 듯한 얼굴로.
<2023 지상최대공모전 로판 부문 우수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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