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이렇게 살려고 다른 놈의 아이를 낳았어?”
귓가를 타고 흐른 남자의 목소리가 심장을 짓눌렀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감히 후원자의 아들을 마음에 품은 순간?’
‘그의 아이를 홀로 낳았을 때?’
그도 아니면 5년 만에 찾아온 당신을 마주했을 때일까.
슬며시 내리는 가랑비에 젖어 드는 것처럼, 제헌을 다시 사랑하게 되었다.
어쩌면 이번은 다를지 모른다고.
그러나 그건 착각이었다.
미련한 희망에 취해 외면하려던 현실이 일깨워졌다.
“아이는 안 돼요! 제발 빼앗지 마세요…….”
탁 풀린 두 무릎이 땅에 꿇렸다. 치맛자락을 부여잡는 연재의 애원에도 소용없었다.
“내 아들을 가져갔으면, 네 새낀 내게 줘야 마땅하지.”
수년 만에 마주한 여자의 선득한 음성이 심장을 뿌리째 흔들었다.
“천한 네 피가 섞였어도 내 손주잖니. 아이는 받아 주마.”
돌아오지 말아야 했다. 다시 만난 남자에게 흔들리지 말아야 했는데.
후원이라는 이름의 족쇄.
그건 재단을 떠난다고 벗어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낙인처럼 찍힌, 그 끔찍한 증표가 여실했으니.
“네가 지금 그런 걸 따질 처지는 아니지. 너 아직 나 좋아하잖아.”
눈동자에 도는 은은한 안광. 확신을 더하는 깊은 목소리에 심장이 추락했다.
아이와 남자를 둔 갈림길에서 연재는 끝을 보았다.
“정말 이제 지긋지긋해요. 당신도, 당신 집안도.”
여기가 우리의 끝이라면.
“그러니까 이제 그만해요.”
이제는 당신을 놓을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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