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어먹을 역병의 시대였다.
유일한 치료제로 황실과 권력에 이용당한 삶은 벌써 다섯 번째 지옥을 반복하고 있었다.
무슨 짓을 해도 죽을 수가 없었다.
성물이 제힘을 모두 앗아가는 서른 살의 생일까지는
이 생에서 벗어나기 위해 동맹이, 그 남자가 필요했다.
그런데.
"나를 정부로 들여."
“아니.”
역시나 단호한 거절에 이린시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어찌해야 하나 머리를 굴리는 사이 카시온이 입을 열었다.
“결혼하자.”
이 호구를 어쩌면 좋지?
*
처음에는 미친 여자라고 생각했다.
“내가 취향이 아니더라도 어쩔 수 없어.”
“……지금 취향이 문제인 것 같나?”
“살면서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 수 없듯, 안고 싶은 여자만 안을 수는 없는 법이란다.”
“돌겠군.”
하지만 결국 떠올리는 것은 그 얼굴이었다.
이린시스, 이 여자가 중독성 그 자체였다.
쓸데없이 작고, 희고, 약해빠져서 자꾸 신경 쓰이고
시도 때도 없이 생각났다.
“넌 역시 나랑 결혼해야겠다.”
내가 호강시켜 줄게.
제 몸 아낄 줄 모르는 아내로 인해
인내의 지옥을 경험할 줄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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