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돈 지랄 하면서 한 번 잘 살아보려고요.”
잘 나가던 악역 전문 배우 유준희는 스폰 루머에 휩싸이며 한순간에 추락한다.
삶을 비관하던 중 사고가 나고 이대로 생을 마감하나 싶었는데, 드라마 <알파가 사랑할 때>의 악역 유서진에게 빙의했다!
원작에서는 온갖 패악을 부리다가 죽는 놈이지만, 이제는 제멋대로 살아보련다.
악역이고 뭐고 다 그만두고 새로운 삶을 즐기려는데, 갑자기 주인공 한정우가 쫓아왔다.
“한정우 씨는 날 싫어하지 않았나요?”
“난 그런 말 한 기억이 없는데?”
이 새끼 죽다 살아났더니 미친 게 분명하다.
***
“이제 한정우 씨 앞에 안 나타날 겁니다.”
내가 생각해도 유서진이 할 법한 말은 아니었지만, 한정우를 완전히 끊어 내려면 이 방법뿐이었다. 물론 한정우 입장에서는 고작 일주일 만에 바뀐 내 모습을 쉽게 믿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하긴 그 누가 믿을 수 있을까. 하루아침에 나와 모습이 같은 누군가에게 빙의했다는 걸. 나조차도 그것을 받아들이기까지 일주일이 넘게 걸렸는데.
“미안하지만 난 널 잘 알아. 네가 이렇게 순순히 물러설 리 없어.”
역시나 한정우는 내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예상했던 반응에 터질 뻔한 웃음을 잠재운 나는 한정우와 눈을 똑바로 마주했다. 그리고 생긋 웃으며 말했다.
“한정우 씨, 저희 집 부자입니다.”
“…그게 어떻다는 거지?”
뜬금없는 말에 한정우가 눈살을 찌푸렸다. 대답을 잠시 미루고 그에게로 한 걸음 다가간 나는 흐트러진 넥타이를 가볍게 쥐었다. 흠칫 놀란 그가 뒷걸음질을 치려다가 멈춰 섰다.
이것조차도 기 싸움이라고 생각해서 지지 않으려는 거겠지. 평생 누군가에게 굽힌 적이 없는 고고한 한정우다웠다.
“생각해 봤는데 우리 집도 돈 많고 모자란 거 하나 없는데 내가 한정우 씨한테 매달릴 필요가 없더라고요.”
이 말대로 유서진은 이미 모든 것을 갖춘 금수저였다. 물론 한정우에 비하면 모자라지만, 평생 놀고먹고 살 수 있을 정도의 자산이 있는 재벌이었다.
애초에 유서진이 한정우를 원한 것은 유주진을 이기기 위해서였으니, 그것을 내려놓으면 한정우는 부족함이 없는 유서진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걸 한정우가 알 리는 없겠지만.
손에 쥐고 있던 넥타이를 놓아준 나는 한정우에게서 훌쩍 멀어졌다. 지금은 몇 걸음뿐이지만, 이제는 완전히 한정우와 거리를 둘 때였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저도 돈지랄 좀 하면서 잘 살아 보려고요.”
나는 한정우를 향해 멋진 작별을 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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