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결하고 아름다운 기사, 요하네스 무어.
그는 속박된 모든 규율을 어기고서 나를 택하였으나, 안온한 시절이 막을 내렸을 때. 내가 가장 먼저 저버린 것은 그였다.
그리고 대단할 것도 없는 일상이 이젠 가장 소중한 것이 되어버린 내게 오래전의 과오가 다시금 발목을 잡아 온다.
“…경께선 신의가 있는 분이시죠.”
“그리고 넌. 신의를 지킬 가치 따윈 없는 계집이고.”
한철의 사랑이 시든 자리엔 케케묵은 증오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바라는 것이 복수라면. 좋을 대로 하세요.”
결국 나를 망가트려야만 끝날 일이라면 그가 행할 모든 일을 감내할 생각이었다.
어차피 그는 곧 자신이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갈 테고. 이건 그저 잠깐의 분풀이에 불과할 테니까.
분명 그렇게 믿었는데.
“나를 견디는 게, 과거에 대한 속죄라고 했지.”
“…….”
“그렇다면 평생 속죄하도록 해.”
언젠가 사랑해 마지않던 이의 목소리가 귓가에 나긋이 속삭였다.
“매 순간 내 얼굴을 보고 내 자식을 가진 게 네 인생의 더없는 불행이라니. 이보다 완벽한 복수가 어디 있겠나.”
일러스트: 코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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