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인의 명예를 더럽힌 좌의정 정문용을 참수하고, 그 일가족은 모두 노비로 만들라.”
왕의 그 한 마디에, 중전인 서해는 한순간에 가족을 잃게 되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목이 떨어진 그날 밤.
술기운이 가득 오른 왕, 이정이 서해의 침소에 들었다.
“…대체 이게 무슨 짓입니까. 정녕 제게 수치를 안겨 자진하게 하실 참입니까?”
“서해야, 서해야. 즐기면 수치가 아니다. 나는 네가 실컷 즐기게 해 줄 참이니까. 내가 씨 없는 환관의 몸이 아니란 걸, 좌의정이 틀렸다는 걸 증명해야 할 거 아니냐.”
***
사랑 없이 몸만 탐했던 정사가 끝나고.
침소를 벗어나 눈물을 흘리던 서해는 갑자기 밀려오는 현기증에 그대로 연못에 빠진다.
‘이렇게 끝인가.’
숨이 끊어지는 것을 느끼며 다음 생에는 왕족의 무게도, 왕에 대한 사랑도 없는 삶을 다짐했는데…….
눈을 떠보니 익숙한 듯 낯선 사가의 방에, 시집을 간 서해의 몸종 개분이까지 있다?
“개분아. 내가 올해로 몇 살이냐?”
“아씨, 오늘 진짜 이상하시다. 몇 살이긴요, 올해로 딱 시집갈 나이! 스물이시죠!”
12년의 세월을 거슬러 온 서해는,
이번 생에는 절대 왕, 아니 세자와 얽히지 않기로 결심한다.
“내 아까부터 괘씸하다 여겼는데, 너 나를 몰라보겠느냐?”
그 결심이 그로 인해 무참히 무너질 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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