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비실 악마에게 사표를 [단행본]

탕비실 악마에게 사표를 완결

“물을 것도 없죠, 뭐. 원하는 게 저예요?”성경의 말에 무결은 헛웃음을 쳤다. 비뚜름하게 뒤틀린 입매에 다시 몸이 경직됐다.“더럽게 번거롭네.” 말을 한 남자의 시선이 성경의 온몸을 노골적으로 훑어 내렸다. 악마는 사지를 찢는다던 친구의 말이 퍼뜩 머릿속을 맴돌았다.“저는 그냥 찝찝한 당신이랑 이런 모종의 거래를 하기 싫다고요.”“하게 될 거야. 네 욕망을 찾을 때까지 우리가 동거를 하게 됐으니까.”무결의 폭탄 발언에 성경은 입을 떡 벌렸다.유교를 베이스로 성장한 나라에서 동거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안 보여요? 나 여자예요!”성경의 말에 무결은 경멸의 눈빛을 보냈다.“내가 한성경 씨한테 남자구나?”조롱 섞인 질문이라는 걸 알았다. 무시해 버려야 한다는 것도. 하지만 단박에 아니라는 말이 튀어나오진 않았다. 남자지 그럼. 당신이 뭐란 말인가.“왜? 내가 잡아먹기라도 할까 봐?” “한 집에서 부대끼다 보면 모른다는 거죠.”성경은 항의하며 고개를 바짝 치켜들었다.“머리가 나쁜 편인가.”남자는 중얼거린 뒤 벽장문을 닫았다. 그러자 벽장 안쪽에서 누군가 절박한 손길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탕탕탕탕. 이어 수많은 손바닥이 번지듯 온 유리창에 찍히기 시작했다.성경은 조각을 깎아 놓은 듯 완벽한 얼굴로 무감한 표정을 짓고 있는 무결을 바라보았다.“살려 주세요! 아이들만이라도.”“제발 목숨만, 목숨만 부지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곧 애원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의 입가에는 여전히 미소가 걸려있었다.“다시 한 번 말해볼래? 내가 아직 남잔지.”성경은 여실히 깨달았다. 저 남자가 그녀를 '덮칠지 말지'의 문제가 아니라, 그녀를 '살릴지 말지'의 문제였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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