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호가 죽었어.”
빗줄기가 사납게 들이치는 날이었다.
7년을 만난 남자 친구가 죽었다는 소식이 장맛비와 함께 찾아왔다.
“덤프트럭 하나가 서양양IC에서부터 백은호 씨의 차를 쫓아왔습니다.”
경찰은 남자 친구가 살해당했을 가능성을 얘기했고.
“나는 너희들이 결혼까지 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 아쉽게 끝나서 어떡하냐.”
그의 장례식장에 온 유력한 용의자는 비극적인 결말을 조롱했다.
이대로 장례식장의 천장이 무너져 내리면 좋겠다.
나는 이 끔찍한 현실을 감당할 수 없으니까. 그냥 너를 따라 죽어 버리고 싶었다.
그래서 여름에서 봄으로 시간을 되돌아온 걸 깨달았을 때, 간절히 만나고 싶었던 건 건강하게 살아 있는 백은호 하나뿐이었다.
“은호야.”
자연스럽게 흐트러진 앞머리, 세필로 그린 듯한 눈매와 그 아래 자리한 눈물점, 어깻죽지가 팽팽하게 당겨진 하얀 티셔츠. 모두 그대로였다.
“누구?”
하지만 나를 내려다보는 남자의 시선은 시리도록 무감정했고, 그래서 또 지나치게 낯설었다.
나는 정말 시간을 되돌아왔을까.
아니면 악몽 속의 악몽에 갇힌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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