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트룩스 제국의 황제, 칼라일.
그는 자신의 제국에선 그림자도 밟지 못하는 태양같은 존재였지만 우호국의 반역자, 로엘리아의 앞에서 한낱 상인의 가면을 쓰고 물었다.
“네 조건은 아스트룩스 제국으로만 널 데리고 가면 되는 건가?”
“가서 사람을 소개해 줬으면 해.”
여기저기 찢어진 옷을 걸쳤어도 로엘리아는 예법에 어긋나지 않는 황족의 당당함을 가지고 있었다.
“황제.”
“……아스트룩스 제국의 황제?”
저를 만나고 싶다는 대답에 칼라일은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만나서 뭘 하려고 그러지?”
“거래해야지.”
“뭐?”
“서로에게 동등한 거래를 요청할 거라고. 아스트룩스 제국의 황제 폐하께.”
기껏해야 지켜달라고 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 대범한 요청을 할 줄이야.
“참, 재미있는 말이군.”
*
그저 거래에 불과했던 결혼에 불이 붙는 건 한순간이었다.
“사람이 목을 내어 주는 건 그만큼 가까운 사이라는 소리인데.”
낮게 울리는 목소리가 귓바퀴를 타고 흘러들었다.
손끝이 저릿해지고 목 뒤의 솜털이 곤두서는 감각에 로엘리아는 손가락을 말아 쥐었다.
가느다란 하얀 목에 더운 숨이 닿자 로엘리아는 긴장으로 흠칫했다.
검을 쥐는 칼라일의 손가락이 로엘리아의 목을 천천히 둘러쌌다.
한 손으로 그녀의 목을 쥔 칼라일은 움직이지 않는 로엘리아를 보고 입꼬리를 당겼다.
엄지로 가는 목선을 천천히 쓸어내린 칼라일의 손가락이 아래로 내려가는 순간,
“그러니 이제 허락해 주겠어?”
성대를 긁고 나온 그 음성이 로엘리아를 사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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