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신상 조각을 연상케 하는 단단한 근육질의 몸.
고개를 꺾어야 겨우 얼굴이 보이는 장신의 남자.
젖은 머리카락 사이, 벼린 칼날 같은 콧대 옆으로 의중을 알 수 없는 눈이 조용히 그녀에게 못 박혔다.
성가시다는 듯 저를 바라보는 무심한 시선 앞에 진예소는 메두사와 눈이라도 마주친 양 돌처럼 굳어 버렸다.
“무, 무, 무슈 르부아. 아니, 왓 더 헬…….”
“뭐. 남자 몸 처음 봅니까?”
“아니, 왜 대낮에… 이렇게, 다 벗고…….”
인류의 종말을 목격한 듯한 표정인 예소와 달리, 남자의 얼굴에는 일말의 흔들림조차 없었다.
“샤워 중인 사람 집에 뛰어들면서 경보기까지 울린 사람이 할 말인가? 강도가 들었는지, 불이 났는지, 내가 어떻게 압니까. 비상이라고 사이렌이 울려 대는데 격식 차리고 뛰쳐나오나.”
“1시 30분 미팅이잖아요. 고작 10여 분 일찍 온 것뿐인데…….”
“그쪽이 방해 안 했으면 지금쯤 샤워 마치고, 옷 갈아입고, 커피 내리며 기다리고 있었을 텐데. 경보기 해제도 눈치껏 일정 안에 넣어 뒀어야 했나?”
괴팍 예민 보스인 줄만 알았더니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 쓰는 강박 변태 또라이였을 줄이야.
완전히 잘못 걸렸다.
* * *
천상천하 유아독존, 테니스계의 매버릭(Maverick: 이단아), 이호 르부아.
이 음침하고 오만한 남자가 아련한 추억 속 동경하던 풋사랑과 동일 인물이었다니.
현실에서의 재회도 충분히 황당한데, 온통 비밀스럽기만 한 그의 계략에 휘말려 버렸다.
잠깐, 그런데 속절없이 빠져드는 이 찐사랑 역시 계획의 일부 맞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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