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소녀가 있었다.
불의의 사고로 아버지를 잃고, 그 아버지의 빈자리를 이기지 못해 술에 의존하는 엄마를 보살펴야만 했던 소녀.
희망보다 절망을 느껴야 하는 순간이 더 많은 삶이 지나갔다.
그렇기에 그저 살았다.
보호를 받아야 할 마땅한 나이에 보호자가 되어버린 소녀에게 감정이란 건 사치였으니까.
그렇게 살아가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으니까.
또래와 다른 시간을 걸어야 하는 소녀의 삶은 갈수록 피폐해져만 갔다.
그 피폐해진 삶에 결국 주저앉고야 싶어졌을 때쯤.
누군가 소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화낼 줄 모르면 소리라도 지르든가, 소리 지를 용기 없으면 도망이라도 치든가.’
절망의 끝에서 처음으로 마주한 눈은 오직 저를 향한 것이었다.
올곧게 그리고 다정하게.
소녀가 소년을 사랑하게 되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드러낼 수 없는 감정이었다.
시간이 흘러 소녀가, 그리고 소년이 성인이 되어서도 둘 사이는 그저 친구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다정했던 눈빛은 거짓말처럼 사라져버렸다.
아니, 사라진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그런 적이 없던 것처럼.
그런데 한 남자가 그사이에 우뚝 섰다.
남자의 다정한 올곧은 눈은 오직 저를 향했다.
어째서….
어째서 남자는 저에게 손을 내민 소년과 너무도 똑같은 눈빛을 하고 있는 걸까.
도대체 어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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