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정을 생각해 불쌍해서 만나 줬더니.”
불쌍해서……. 유은은 속으로 그 단어를 되새기고 또 되뇌었다. 조금이나마 남아 있는 자존심에 쫙 금이 가면서 와르르 부서져 내려갔다.
“우리가 부부가 되는 순간부터 나는 아이를 가지기 위해 노력하려고 해.”
“…….”
“동의하지?”
“제게 선택권이 있던가요? 왜 묻는 거죠?”
“그러게. 물을 필요가 없지. 네가 싫어한다고 달라질 건 없으니까.”
장승언의 아이라니. 싫었다. 무엇보다 그와 살이 닿는다고 생각하니 끔찍했다. 결혼도 부족해서 좋아하지 않은 사람과 밤을 보내야 한다니. 생각하는 것만으로 속이 뒤틀렸다.
.
.
.
이상했다. 분명 속이 뒤틀릴 만큼 싫었는데.
“젖었네.”
“거, 거실에서 이야기해요. 머리 말리고 갈게요. 이번에는 우리 서로 목소리 높이지 말고 차분하게 말로―”
“오히려 시원하고 좋아.”
“―네?”
그에게 심장 박동 소리가 들릴까 봐 말을 꺼내던 유은의 손에 힘이 쭉 빠져나갔다. 변태적인 발언에 등줄기에서 소름이 돋았다. 그의 다갈색 짙은 동공에 광기가 물들어 있었다.
그가 싫다. 멋대로 구는 것도, 통제하려는 것도, 능글맞게 대하는 것도, 나만 바라보겠다고 뻔뻔하게 거짓말하는 것도, 결국에는 여자가 있는 것 같은 것도, 방탄함을 버리지 못한 것 같은 것도. 그러면서 소유욕을 내보이는 그가 얄미웠다.
자신을 원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의 모습이 보일 때마다, 그를 향한 혐오와 두려움의 이면에 숨은 인정하고 싶지 않은 감정이 불쑥 고개를 들었다. 유은은 고개를 들어 올린 감정을 눌렀다.
그를 미워할수록 가슴이 뜨거워지고 있었다.
제일 먼저 리뷰를 달아보시겠어요? 첫 리뷰를 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