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사건은 창작된 허구이며, 실제 존재하는 인물이나 단체, 지역과는 무관합니다.
※일부 무속 관련 용어는 국립민속박물관에서 발행한 『한국민속대백과사전-무속신앙』을 참고하였으며, 작품 속 설정은 실제 무속 신앙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시작된 거지 같은 대망도 생활.
유산을 노리는 폭력적인 작은아빠, 무당인 할머니, 이주아의 고통을 모르는 척하는 사촌과 추근대는 소정후까지. 모두가 주아를 괴롭혔지만, 백여준만은 아니었다.
백여준이 다정하게 눈 맞추며, 웃음기 서린 목소리로 자신을 부를 때면, 짧게나마 숨이 트였다.
“나 죽으면, 네가 우리 엄마 딸 했으면 좋겠다.”
마음 아픈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죽음을 앞둔 본인보다 남겨질 사람들을 먼저 걱정하는 내 첫사랑.
그런 여준과 하루라도 더 같이 있고 싶었다.
그래서 주아는 백여준의 양친이 할머니를 찾아와, 아들을 살려달라며 빌다가 쫓겨나는 걸, 조용히 두고만 볼 수가 없었다.
“아주머니가 정말 뭐든 하실 생각이면, 가서 빌어 보세요.”
주아는 여준의 부모님에게 할머니가 가장 두려워하는 버려진 서낭당을 알려준다.
그리고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온 백여준은 어딘가 달라졌는데….
“백여준. 내가 예전에도 서낭당은 위험하다고, 함부로 드나들지 말라고 했잖아. 얼른 나….”
“그렇게 잘 알면서.”
예고 없이 흘러나온, 그윽하면서도 부드러운 목소리가 주아의 재촉을 잘라먹었다.
“다 알면서도.”
나직한 음성이 고막을 간질이다 사그라지며, 오묘한 여운을 남겼다. 크게 소리를 낸 것도 아닌데, 과할 정도로 또렷하게 들려서 온몸의 솜털이 삐쭉 곤두섰다.
“가서 빌어 보라고, 등 떠밀었던 이유는 뭘까.”
백여준의 까만 눈동자가 묘한 빛을 머금고 번득거렸다.
일러스트: 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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