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관은 당장 작성을 멈추어라.”불같은 어명이 떨어졌다.사초를 한 폭의 그림 그리듯 작성하던 붓 놀림이 잠시 흔들렸다.“사관은 보고 들은 것을 그대로 후대에 전할 것입니다.”“하……?”태성국의 망나니 왕이라 하였다.음주 가무를 즐기기 위해 나라 곳간 털기를 서슴지 않는다고.여자를 좋아한다는 소문대로 임금의 외모 또한 가히 출중하였다.“윤원 선비님과 닮은 얼굴로 어쩜 저리 재수가 없으실까.”사관이 입술을 비죽거렸다.둥글게 모인 붉은 입술을 본 임금이 미간을 찡그렸다.“내관은 즉시 사관을 내치거라.”은희를 빼닮은 얼굴로 거슬리는 짓만 골라 하는 게 얄미웠다.제게 집착하는 사내보다는 은희가 보고 싶었다.경비병에게 붙들려 끌려나가는 사내가 제가 그토록 그리워하는 여인인 줄도 모르고.* * *"널 곁에 두고도 여태 몰랐다니."세찬 빗소리가 울리고 뜨거운 숨결만이 가득한 방.제가 연모하는 여인이자 사내의 눈동자가 잘게 흔들렸다.“아, 아닙니다! 저는 홍은희입니다!”“그리고 홍은생이기도 한 거겠지.”뒤늦게 부정하는 목소리가 크게 떨렸다.“나의 마음을 받아 주겠느냐.”“…….”“은희야.”“…….”거센 빗소리가 더는 들려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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