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의 고리

회귀의 고리

<회귀의 고리> 어쩌다보니 회귀한 송유란,

과거에 버린 인연을 찾아 애썼지만, 어쩐지 그가 아닌 다른 이가 눈에 밟힌다.

-본문 중에서-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속절없이 외치던 때가 있었다.

그렇게 좌절하고 좌절해도 변하지 않는 현실에 눈물만 퍼붓던 때도 있었는데, 어느덧 나는 변해 버렸다.

열정 어렸던 사랑도 잊고, 내가 깨부숴 버린 그 사랑도 잊어버리고야 말았다.

미지근한 물로 세안을 하고, 화려한 화장을 하며 내 나이 든 얼굴을 지운다. 그러고 나서 거울을 보면, 남아 있는 것은 눈매가 사나운 여자.

비단으로 유명한 화양에서 들여온 고운 옷감을 두르고, 새빨간색으로 손톱을 치장한다. 귀와 목에 걸린 금붙이는 순금으로 장식하고, 천천히 집 밖으로 향했다. 그런데 오늘은 날이 참으로 흐리구나. 그렇지만 오늘의 출타는 중한 일이라, 나는 여느 때라면 신경 쓸 것도 잊었다.

“홀몸도 아니신데, 주의하시지 않고요.”

흘러가는 말로 나를 자극하는 말도 있었다. 그렇지만, 애초에 내 뱃속에 있는 아이에 대한 애정도 없었다.

평소라면 나를 모시는 사람을 살펴보았을 것이고, 발길이 늦더라도 점검을 하고 밖으로 향했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그럴 여유가 없었다. 아마 그것이 사람 일이란 거겠지.

마차 안에서 머물러, 서안 땅으로 황급히 떠나자는 말에 마차가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어쩐지 가던 길이 낯익던 길을 떠나 낯선 길 쪽으로 들어선다.

“이보게들! 이게 무슨 일인가!”

마차 안에서 소리치자 급히 달리던 마차가 달리는 것을 멎었다.

그리고 마차 앞에 앉아서 몰던 이가 내리는 소리가 났다.

“부인.”

마차 안에서 밖을 쳐다보자니, 말을 몰던 종자가 나를 쳐다보며 다가온다. 단정한 흑발과 푸른 눈의 단아한 미안, 평소에 부리던 종자가 아니라, 왠지 어딘가 다른 곳에서 낯익은 얼굴이라고 생각했을 때쯤, 난 가슴팍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시선을 아래로 돌릴 수밖에 없었다. 가슴 부위에서 붉은 피가 번져 나가고 그 정중앙에는 서슬 어린 푸른 단검이 박혀 있었다.

“진헌…….”

그제야 생각났다. 내가 처절하게 버렸던 내 사랑. 그래, 이 젊은 청년은 그를 닮았구나.

내가 그 이름을 읊자, 나의 가슴에 단검을 박아 넣은 청년은 말없이 내 가슴에서 단검을 뽑아 든다. 금세 내 가슴팍에서는 뜨거운 피가 솟아나오고, 청년은 뒤돌아 달리며 쓰러지는 나를 힐끔 쳐다보고는 떠나 버렸다.

내 업보, 스무 살, 내 어린 시절의 바보 같은 선택이 지금의 나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나 보다.

아니, 그 선택은 평생 나를 옭아 버렸고, 나에게 평생의 좌절만을 안겨 주었으니 말이다.

진헌, 이제야 나는 그대에게 가는 걸까. 그대를 죽인 나의 속죄를 받아 주길 바라.

빙글빙글 돌아가는 뇌리 속에서 다시 깨어났을 때, 나는 이것이 저세상인가 했다.

그렇지만 저세상은 왠지 모르게 참으로도 낯이 익었다.

처음 눈에 보인 것은 연분홍 꽃 색으로 치장된 침실이었다. 하늘거리는 천 자락이 나풀거리고, 내가 처녀 시절 즐겨 읽던, 논어, 맹자나 그 당대 명문이라고 인정받던 시선집이 즐비하게 꽂혀 있는 책장. 내가 즐겨 쓰던 소주 땅의 묵향이 가득한 방 안, 그곳에서 깨어나 나는 연신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이곳이 과연 어디인가. 이곳은 분명 내 기억 속에 있는 곳이었지만, 절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래서 조심스레 자리에서 일어나 나는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책장의 책들을 한 권, 한 권 살피고, 책상 위에 놓인 물체들이 무엇인지 보았다. 그리고 내가 차려입은 경장을 한 번 돌아보고, 옷장으로 여겨지는 곳까지 한바탕 뒤집을 셈이었다.

그 순간, 내 귓속에 울려 퍼지는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 버렸다.

“아가씨?”

진헌, 내가 사랑했던 그의 목소리가 새삼 내 귓가에 울려 퍼졌다.

“계속 누워 계시면 잠만 자는 괴물이 되어 버릴 겁니다.”

아직 내 방에 들어오지 않은 그의 목소리는 그가 아직 살아 있다고 외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내 방으로 들어왔을 때, 우리 세가의 총관의 아들로서 나를 돌보아 주었던 모습 그대로, 그가 내 앞에 멀쩡하게 서 있었다. 열댓 살의 앳된 모습, 그가 죽던 20대의 모습이 아닌 그 싱그러운 모습 그대로 내 앞에 서 있다.

“지, 진헌!”

나는 금세 자리를 차고 일어나 그의 품 안에 안겼다. 그러자 그가 놀라며 대경실색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렇지만 내 눈망울에서는 눈물이 펑펑 흘러내렸고, 더 이상 그를 놓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내 어린 날의 치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게 만들었다. 신분도, 재력도 중요한 것이 아닌데, 중요한 것은 그저 이 사람 하나였다는 것을 나는 너무나도 늦게 알았던 것이다.

그렇게 한참 동안, 그의 품 안에서 그를 붙들고 있자니, 그가 그의 서늘한 손으로 내 머리를 다독여 준다.

“아가씨, 무서운 꿈이라도 꾸신 겁니까.”

그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귀에 울리고, 그의 평온한 미소가 나를 향한다.

그것을 쳐다보며 나는 맹세했다. 다시는 그를 잃지 않으리라. 모르겠다. 지금이 꿈인지 생시인지. 하나, 이것이 생시라면, 내가 돌아온 것이 맞는다면, 절대 그를 다시는 잃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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