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그냥 친구로 지내자. 아니, 처음처럼 지내자.”수많은 생각들이 뒤엉켜있는 틈을 비집고 들어온 얀의 말이 선뜻 이해되지 않았다.이해할 수 없는 말이 이어졌다.이건 최악의 소화불량이었다. 간신히 목구멍을 비집고 나온 목소리는 멍청하게 들렸다.“…무슨 뜻이야?”“어른들이 마음대로 묶어준 또래친구.”아치는 대체로 이성적이고 차분한 타입이었다. 생각도 간결했다.그것이 얀 앞에선 간혹, 아니 빈번하게 허물어지곤 했는데 지금은 완전히 엉망진창이었다.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는 듯 얀의 작은 입술에 힘이 들어갔다.아치의 갈색 눈동자가 짙어졌다.“비겁하네.”낮게 가라앉은 아치의 목소리는 덜덜덜 떨리고 있던 얀의 심장을 꽁꽁 얼려버렸다.얀의 고개가 아래로 푹 꺾이고 밝고 가는 금색 머리카락이 바람을 따라 나풀나풀거렸다.입에서 나온 말과는 달리 사랑스러웠다.“맞아. 비겁해서 그런 거 맞아.”아래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에 숨겨진 얀의 옅은 하늘색 눈동자가 잘게 떨렸다.<[본 도서는 15세 이용가로 개정된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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