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예요. 선배를 좋아했어요. 선배 따라서 도서관 동아리에 가입했어요. 선배가 농구할 때도 멋있었고요. 천문학자가 꿈인 것도 대단해 보였어요. 울고 싶을 때 선배 덕분에 힘이 됐어요.”시준이 눈매를 찡긋하더니 눈썹 앞머리를 긁었다. “그래서 당신과 내가 사귀기라도 했습니까?”그의 말에 은재는 놀라서 대답했다.“네? 제가…… 선배를 좋아한 건데요.”서로의 마음도 아니고, 굳이 짝사랑한 여자를 선처해 줄 필요는 없었다. 그가 옆에서 기다리던 남자를 부르려고 손을 올렸다. 은재가 그것을 눈치채고는 다급하게 소리쳤다.“네, 맞아요! 선배, 우리 서로 좋아해서 사귀었어요. 그런데 선배가 유학 가서 어쩔 수 없이 헤어진 거예요. 보고 싶었어요.”그는 울먹이는 여자를 내려다봤다. 하얀 얼굴에 오목조목한 이목구비가 빚어 만든 도자기 인형 같았다. 큰 눈 안을 꽉 채운 맑은 갈색 눈동자가 찰랑이는 눈물 속에서 반짝였다. 우리가 사귀었다고. 아마도 살고 싶어서 지어낸 말이겠지. 거짓말을 한 주제에 눈빛은 또 왜 저리 애절한지. 그러나 그녀가 시준을 좋아했다는 말은 진실인 듯했다. 문득 사고 전의 삶에서 이 여자와 어떤 경험을 했을지 궁금해졌다.“우리가 서로 좋아했다고요? 키스도 했나요? 고등학생이니 그 정도는 했겠지.”시준이 은재의 뺨에 있던 한쪽 손을 목덜미 깊숙이 밀어 넣었다.“그 말, 사실인지 확인해 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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