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들이 따로 없네.”원치 않는 결혼을 하게 된 것도 모자라약혼자가 다른 여자와 뒹구는 모습까지 목격한 최악의 날.“저 아세요?”“날 기억하지 못하다니 서운하네. 그날 일 벌써 잊은 거야?”의도치 않게 약혼자의 바람 현장을 함께 직관하게 된 남자가보라의 삶에 예기치 못한 사고처럼 들이닥쳐 왔다.“간단한 문젠데. 아까 그놈 말고, 나하고 결혼하는 거지.”“……네?”“노유한, 윤보라 그리고 결혼. 자기는 이 세 가지만 기억하면 돼.”마치 저를 알고 있는 듯한 의뭉스러운 태도를 포함하여하나부터 열까지 수상한 점투성이인 남자, 노유한.그가 등장하면서부터 보라의 일상이 180도 뒤바뀌기 시작하는데…….* * *“조금 당황스럽더라도 믿어 봐요. 좋은 놈일 거라고.”“제가 왜 그래야 해요?”“결혼할 사이니까.”“하지만, 정말 저희 부모님께 허락받은 건가요?”“약간의 거래를 해야 했지만, 네.”유한이 어깨를 가볍게 들썩였다. 가벼운 남자의 말투와 행동에 보라는 대화를 할수록 더 혼란스러워지는 기분이었다. 오늘 처음 본 남자였다. 그런 사람이 갑자기 자신의 인생에 바람처럼 끼어들었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박원규보다는 내가 나을 텐데.”“그걸 제가 어떻게 알죠? 오늘 처음 봤는데.”“딱 봐도 그렇지 않나? 외모도 훨씬 잘났고. 아, 외도는 할 생각도 관심도 없습니다. 이래 봬도 순정파라서.”유한이 장난스럽게 말을 이었다. 보라는 능글맞은 그의 태도가 기가 막혔다. 그는 말문이 막힌 채 눈만 깜빡이는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시원한 시트러스 향이 콧속으로 훅 끼쳐 들었다. 어쩐지 바람 같은 이미지의 남자와 잘 어울리는 향이라는 상념이 스칠 때쯤 그가 손을 뻗으며 말했다.“그놈이랑 어디까지 했어?”“……네?”“나는 내 거에 누가 손대는 건 질색인데, 너라면 그것도 감수할 수 있을 것 같아.”그는 예쁜 눈웃음을 지은 채 알 수 없는 말을 늘어놓았다. 그의 말을 곱씹으려 시선을 잠시 내리깐 찰나, 입술에 무언가가 닿았다. 놀란 탓에 지금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금방 알아차리지 못했다. 부드러우면서 뜨겁고 말캉한 무언가가 제 입술을 집어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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