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게, 칼은 왜 쥐어. 그냥 찔러 버리지.”
예비 신랑의 바람을 목격하고 칼날을 움켜쥔 해주 앞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옆집 남자, 반재신이 나타난다.
단조로운 말투와 무감한 얼굴로 섬뜩한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 남자.
그런 그가 처음으로 감정을 드러냈을 때 해주는 낯설고 위험한 충동을 느낀다.
차라리 칼날을 쥐는 게 나을 것만 같은 그런.
충동적으로 입을 맞춘 해주에게 돌아온 남자의 대답은.
“지금부터 그쪽이랑 잘 생각인데, 어때요?”
“네?”
“의사를 묻는 건 아니고. 시작은 그쪽이 먼저 했으니까.”
서늘한 남자가 건네는 온기에는 낯선 해방감이 존재한다.
그러나 하룻밤 꿈일 뿐이다.
오래된 소문이 만들어 낸 죄책감은 해주를 결혼식장으로 이끈다.
저도 다른 남자와 부정을 저질렀으니 부정한 것들끼리 부대끼며 살면 그뿐이라 여겼건만.
“기해주 씨, 사람 참 우습게 만드네.”
웨딩드레스를 입은 해주 앞에 나타난 남자는 그날 밤의 기억을 거침없이 불러온다.
“이쯤에서 관두는 게 어때요? 이 결혼 말입니다.”
“지금 협박하시는 건가요?”
“협박이 아니라 구원, 이라면요?”
해주는 미처 알지 못했다.
잿빛이 도는 검은 눈동자.
그 안에 인 파동을 마주한 순간, 이미 몰닉은 시작되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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