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의 주선으로 약혼한 남자와 결혼을 앞둔 어느 날.
한국무용수 유은은 차량 사고로 장애를 얻게 되고 설상가상 파혼까지 당한다.
집안에서는 애물단지가 된 그녀를 재취 자리에 팔아버리려 하는데…
‘못 써먹은 년. 못 쓸 여자.’
절망 앞에서 절뚝거리는 발을 이끌고, 유은은 사고 차량 제조사인 태상자동차 총수의 손자 차강재를 찾아간다.
어린 시절, 자신을 구해줬던 그에게.
“나는 결혼할 남자가 불임이어도 괜찮아요. 결혼해서 아이를 못 갖는 거, 여자 쪽이 문제라고 해도 돼요. 날 얼마든지 이용해도 되니까….”
그의 비밀을 빌미로 결혼을 요구하는 여자 앞에서, 남자는 15년 전엔 보지 못했던 깊은 흉터를 담은 채 모호한 눈길만 내던졌다.
고개를 비스듬히 굴리며 고저 없는 음성으로 답했다.
“다리 저는 여자는 별론데.”
말갛던 눈망울에 강한 충격과 수치가 서렸다.
마지막 희망마저 사라졌다고 생각한 순간,
소년일 때의 웃음을 잃은 남자는 때마침 연기해 줄 아내가 필요했다며 손을 내민다.
“3년만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결혼 생활을 유지하면 그쪽이 원하는 걸 들어줄게요.”
서로의 필요에 의해 맺어진 결혼.
건조하기 짝이 없는 동거.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최초의 의미는 퇴색되기 시작한다.
* * *
“무서우면 지금 관둬요. 중간에 멈출 생각도 자신도 없으니까.”
긴 속눈썹을 파르르 떠는 여자를 보던 남자의 입에서 고혹적인 저음이 내려앉았다.
남자의 눈가에 도도록하게 솟은 오래된 흉터는 질감을 달리하며 번들거리고 있었다.
“내가 원하는 건 뭐든 해준다면서요. 계속해 줘요.”
남자의 몸에서 흐르는 기류가 형형하다. 농담이 짙은 먹빛 눈동자에는 배덕한 욕망과 쾌락이 번져갔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던 캄캄한 밤은 붉은 열락으로 가득 채워졌다.
피눈물을 흘리는 듯 온 시야가 붉게 물들어갔다.
나는 지금 몹쓸 짓을 하고 있어.
아주, 아주 몹쓸 짓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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