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제대로 튀었나 했더니.”빗물이 들어가 흐릿한 시야에 먼지 한 톨 묻지 않은 반들반들한 구두 앞코가 담겼다.매끈한 감촉의 바지를 쭉 올라가 시선 끝에 담은 남자의 얼굴이 선명히 드러난 순간, 이서는 숨을 집어삼켰다.차강현.SDR금융증권 기획전략실 이사이자 SDR의 모든 것을 차지할 남자.휘어지는 눈매에서 날 것의 질 나쁜 천박함이 흐른다면, 일자로 되돌아간 눈매에서는 고고한 오만함과 거역하기 힘든 위압감이 묻어났다.한쪽 입술을 삐뚜름하게 올린 그가 작게 피식거렸다.“이런 데서 구질구질하게 살고 있네. 하여간 숨는 거 하난 기가 막혀. 안 그래. 유 비서?”빗소리를 뚫고 꽂히는 익숙한 호칭과.“유이서.”귓가에 새겨지리만큼 들었던 부름.이어지는 더는 버틸 수 없는 심장 떨리는 그 음성이.“이서야.”날카로운 콧날이 이서의 이마에 닿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웃음기가 맴도는 숨결이 바짝 다가왔다.“애까지 가진 몸으로 딱하게 비까지 맞고. 그거 만든 놈이 나잖아. 안 그래?”곧은 검지가 뻗어 와 이서의 작은 턱을 스윽 들어 올렸다. 강한 힘에 들어 올려진 시선이 짙은 눈동자와 진하게 얽혔다.“유이서, 넌 평생 내 곁에서 못 도망쳐.”삽시간에 바뀐 단호한 어조가 이서의 속을 시큰하게 휘감았다.“난 너 놓아줄 생각 없어.”덤덤히 흘러나온 나직한 경고와 함께 건조하던 얼굴 위로 맹렬한 집착이 어른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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