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사이 아닌 사이

아무 사이 아닌 사이

“내가 왜 네 말을 믿어줘야 하는지 말해봐.”
그러게. 왜 그래야 할까. 왜 너는 내 말만 믿을 수가 없을까.
귓가가 먹먹해졌다. 소리가 사라진 세상에 덩그러니 남겨져 멍하니 달싹거리는 그의 입술만 쳐다보았다.
아프겠다. 다 터졌네.
“별 같잖지도 않은 게 사람 귀찮게 하고 있어.”
발밑이 무너진다는 건 의외로 비유가 아니었다.
간신히 숨만 쉬면서, 깨달았다.
2년의 기억은 이제 혼자만의 것이었다.
사랑하고 사랑받았던 그 시간이 온전히 제 손안에만 남았다.

***

지수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
지수는, 변함이 없었다. 거의 변하지 않았다.
“이은지입니다. 처음 뵙겠습….”
“처음 보는 거 아니잖아.”
반사적으로 눈을 들었다.
“난 너 아는데.”
잠시 넋을 잃고 그를 바라보았다. 활짝 웃는 얼굴엔 뾰족했던 인상이 흔적도 없다.
스물셋의 최지수처럼, 그러니까, 저를 사랑했던 그때처럼.
“눈치 주려는 건 아니고, 반가워서.”
지수가 손을 내밀었다. 땀으로 흠뻑 젖은 손바닥을 대강 문질러 닦고, 그 손을 잡았다. 손바닥이 조금 딱딱했다. 옛날엔 그도 긴장해서 축축했었다.
나를 모르는 너와 악수하게 되는 날이 올 줄 몰랐어.
그 남자는 이제 제 머릿속에만 남아 있다는 걸 알고 있는데도 스물셋 최지수와 닮은 흔적에 심장이 따끔거렸다.
호흡을 다잡았다.
스물셋 최지수가 나오는 꿈을 꾸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악몽이었다.

일러스트: 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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