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엔 그 자식이 잘해 주지 않나 봐요.”
새카맣고 끈적한 잉크를 푼 것 같은 무광의 눈동자.
무채색의 눈이 그녀를 집어삼킬 듯 바라보고 있었다.
“김동욱이었나. 둘이 살림 차린 건 알고 있었는데 아직 안 갈라섰나 해서.”
예전의 무혁은 좀 더 다정하게 웃었던 것 같은데.
어쩐지 목이 졸리는 기분이 들어 서희는 무혁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말씀 함부로 하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보니까 혼인 신고도 안 했던데.”
보잘것없는 거짓말이 밝혀진 서희의 얼굴이 붉어졌다.
“이제 발레는 안 하고?”
그 소리에 잊고 있던 발목의 통증이 욱신 치밀었다.
느릿한 목소리는 꽤나 거슬린다는 감정을 품고 있었다.
아니, 거슬린다는 건 오히려 눈빛에서 더 확연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그리고, 빚이 많던데요. 아직도 그렇게 삽니까?”
그렇게 산다는 뜻이 뭔지 알았다.
구질구질하게.
돈 걱정을 하며.
생략된 말이 귓가에 들리는 것 같아 주먹을 세게 말아 쥐었다.
“혹시 돈 필요하면 이쪽으로 연락해요.”
무혁이 품 안에서 명함 케이스를 꺼내 명함을 내밀었다.
잊을 리 없는 그의 번호는 보지 않아도 선명히 머릿속에 떠올랐다.
알지만 연락할 일은 없다.
무혁은 서희의 이복 언니, 허세영의 약혼자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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