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족과의 전쟁 이후 평화로운 나날만 이어지자 대악마 르벨은 살아가는 것이 귀찮아졌다. 그렇게 나태하게 잠에 빠져 살던 어느 날,
[인간들의 삶을 경험하고 치열하게 살던 그때의 날을 떠올리도록!]
마신님의 뜻에 따라 인간의 몸에 빙의하게 되었다. 그것도 곧 신부로 팔려가는 백치 황자라고 불리는 몸에.
어차피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나는 것이 인간의 생이다. 그 생을 즐겨보기로 했다.
그 후 르벨은 강제로 악마라 불리는 북부 가문의 신부로 팔려간다. 북부는 발정기를 억누르기 위한 억제제로서 르벨을 필요로 했고, 르벨은 귀찮은 인간투성이인 황성에서 벗어나고자 결혼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그의 태도가 이상하다. 발정기를 해결하기 위해 저를 데려와 놓고, 정작 발정기가 오니 가까이 오지 말라고 한다.
“내외하나?”
***
“인간, 날 받겠나?”
르벨의 몸은 빠르게 아래로 떨어졌다. 멀리 있던 남자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당신….”
르벨을 안은 남자가 입을 열었다. 동굴 같은 낮은 음성이 르벨의 귓가에 꽂혔다.
“결혼이 끔찍해서 죽으려고 한 겁니까?”
결혼이라. 반려 의식을 말하는 건가?
***
“…전하께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전하께서 이 결혼을 싫어할 것 같았기에, 당신의 의견을 존중하고 싶었습니다.”
“그렇다면 내 뜻을 밝히지.”
르벨은 차분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그대가 여기서 제일 강하다. 나같이 약한 이가 강한 자의 신부가 되는 건 축복이지.”
제일 먼저 리뷰를 달아보시겠어요? 첫 리뷰를 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