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하. 참으로 불쌍하십니다.”
송희국의 개국 공신 가문, 단 일가의 여식 단아정.
총명함과 슬기로 황제의 총애를 받으며 숙비의 자리에 올랐던 그녀는
황제의 이복동생과 사통했다는 누명을 쓰고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진다.
가문은 멸문당하고, 아정은 목숨 하나만 가진 채 도망쳤다.
그녀의 품에 안겨 있는 울음조차 어색한 갓난아이를 지키기 위해.
“짐은 단 한 순간도 너를 잊어 본 적 없다. 만나면 너를 어떻게 찢어 죽일지 하루도 빠짐없이 궁리하면서 말이다!”
“저는 단 한 번도, 폐하를 배신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결국 황제의 손에 붙잡히고 그는 제 자식이 분명한 아이의 목숨마저 거둬 간다.
그날 밤, 천지를 헤집는 비명과 함께 실성한 여인의 웃음소리가 허공에 퍼졌다.
“만약 내세가 존재한다면 그때는 제가 먼저 폐하를 찾아내겠습니다.”
단숨에 미소를 거둬들인 아정이 이를 악물고 짓씹었다.
“반드시 찾아내어, 폐하께서 아끼시는 모든 것을 당신의 눈앞에서 하나하나 친히 찢어발겨 보이겠습니다.”
부릅뜬 눈에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그날이 오면, 부디 원망조차 하지 마십시오.”
눈물도, 웃음도 모두 지나간 자리에는 초연함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아정이 고개를 젖혔다.
입가에 잔잔한 신소를 띤 채 쥐고 있는 화살을 높게 든 그녀가 그대로 힘 있게 내려찍었다.
후회하는 것이 있다면 단 한 가지뿐이었다.
만약,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만약, 단 한 번의 기회가 더 주어진다면.
그때는 더 이상 울며 빌지도, 용서를 구하지도 않으리.
내게 씌워진 억울함보다 더 깊게, 내게 새겨진 원한보다 더 잔혹하게.
그들이 내게 가르쳐 준 절망을, 그 악의를.
기필코 되돌려 주리라고 말이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또 한 번의 생이 주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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