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로 한들 사생아로 태어나 리스 왕궁의 한구석에서 궁핍하게 살아가던 베아트리체.
“베아트리체, 네 혼담이 정해졌단다. 너는 엘라리어스 대공과 결혼하게 될 거야.”
그 끝은 일흔 먹은 늙은 대공의 후처 자리였다.
리스 왕국과 엘라리어스 대공국의 정전 협정을 증거하기 위한 대공비.
결혼식을 치른 그날 밤.
끔찍한 마음을 안고 침실로 향한 그녀의 앞에 보인 장면은
대공의 주검 위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검을 들고 있는… 대공가의 장남 로렌스였다.
“보다시피 대공 전하는 자객의 칼에 급사하셨다. 그렇지 않습니까, 어머니?”
베아트리체는 로렌스에게 입막음을 당하고, 의문을 속으로 숨긴 채 선대공비가 되어 얌전히 살아간다.
로렌스는 그녀를 감시하는 것인지 이따금 그녀를 찾아오기도 했다.
가능하다면 그렇게 조용히, 생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삶에 그럭저럭 만족하며 살아갔을 것이다.
“전하. 차를 드시지요.”
그 차 한 모금에 죽지만 않았더라면.
되돌아온 시간, 베아트리체는 제게 닥쳐올 운명을 바꾸기로 결심한다.
***
이전 생과 똑같이 죽어서 누워 있는 대공과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검을 들고 있는 로렌스와 마주쳤다.
“저런, 대공 전하께선 방금 자객의 손에 죽음을 맞이하셨는데.”
베아트리체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그녀는 이내 결연하게 손에 든 것을 내밀었다.
결혼 조서였다.
“이, 이걸…….”
“결혼 조서?”
“정전 협정에 따른 정략결혼의 대상은 리스 왕국의 공주와 대공 전하예요. 그, 그러니까…… 대공이 되시면 저를 대공비로 삼으셔야 해요.”
허, 로렌스가 황당하다는 듯이 실소를 뱉었다.
“내일 결혼하기로 했던 사람의 주검 위에서 잘도 발칙한 말을 하는군.”
하지만 베아트리체의 말에는 틀린 점이 없었다.
이제는 로렌스가 대공이기 때문이었다.
“약속은 지켜야겠지, 비록 그 형태가 달라지긴 했지만.”
그렇게 베아트리체의 남편이 바뀌었다.
그녀의 운명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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