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한 가정 속 구김 없이 자란 외동딸과 그 가정에 얹혀사는 피 후원자. 시작은 그랬을지언정 서로가 서로에게 특별한 존재일 거라 믿던 시절이 있었다.
“왜… 말도 없이 사라진 거야?”
“네 눈앞에 다시 나타날 생각, 없었으니까.”
아무래도 괜찮았다. 차디차게 굳어버린 제 삶에 그가 희망을 틔울 온기를 불어넣었으니. 허나, 조금씩 서로의 일상을 파고들던 두 사람이 마주한 현실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연주 아버지, 빌어먹을 사채 때문에 돌아가셨잖아. 근데 연주는 당신이 사채 당겨주는 놈인 거 모르고 있던데. 알게 되면 볼만하지 않겠어요?”
“내가 사적인 감정에 흔들리지 말라 캤제. 이자 안 받고 원금만 청산해 준 거는 평생 니 부려 먹을라고 한 선택이라고.”
또다시 그녀의 옆에서 사라져야 한다 해도 연주가 상처받고 다치는 일 따윈 없어야 했다. 오직 그 하나만을 위해 내린 선택이었으니. 또 다른 결심을 내린 밤, 현은 연주에게 마지막 무대를 부탁한다.
“바이올린은 마찰을 통해서 각양각색의 소리를 낸다.”
“응, 현 위로 활이 미끄러질 때….”
“…연주야. 나를 연주해 봐.”
아무도 건드려본 적 없는 줄에서 무슨 소리가 날지 궁금하지 않냐고. 그녀를 담은 현의 눈동자가 이채롭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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