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어차피 해야 하는 결혼일 텐데 피할 생각 없어요.”첫인상부터 쉽지 않은 결혼이었다.자식까지 잃은 마당에 조부는 ‘우경’ 자신의 결혼까지 제 뜻대로 휘두르고 싶어 했다.하지만 고르고 고른 게 자식이 없던 유 대표가 재혼한 아내를 통해 데려온 여자였다.이쯤에서 결혼이니 뭐니 정리하자고 말을 꺼내려던 우경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그래서 말인데 이혼은 언제쯤 해 주실 건가요?”이혼부터 대뜸 얘기를 꺼내자 도리어 당황한 우경이었다. 그러나 이연은 방긋 웃으며 덧붙였다.“물론 먼저 해 주시는 것도 차우경 씨 맞죠?”그 순간 차우경은 유이연을 향한 호기심에 불이 붙어 버렸다.그리고 그게 사랑이 될 무렵 끝나는 것도 순식간이었다.***“오랜만이야. 유이연.”삼 년 전 이혼했던 전남편인 차우경이 이연이 일하는 로펌 계약직 변호사로 왔다.거기에 술김에 저지른 낯선 남자와의 실수가 바로 ‘그’라니.태연한 얼굴로 그가 건넨 쇼핑백 바깥으로 삐죽 튀어나온 건 이연이 아침에 놓고 나온 속옷이었다.“차우경 씨 설마 우리 어제….”직접적으로 잤냐고 묻기 머쓱해 우물쭈물하던 이연의 옆으로 고개를 비스듬히 내린 우경이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기억 안 나면 기억나게 해 줄까?”그의 눈동자가 이연의 시선을 똑바로 받아 내더니, 이내 아래로, 입술로 천천히 옮겨 갔다. 그 순간, 심장이 쿵 하고 울렸다.“내가 여기 오겠다는 조건은 딱 그거 하나였어. 유이연이 내 파트너가 되어 주는 조건.”자신이 파트너가 되어 주는 조건으로 계약직이란 자리를 허락했다고? 도대체 무슨 꿍꿍이야.꼭 정율이 아니라도 우경의 스펙이면 대형 로펌에서 데려가려 안달 났을 텐데.고작 자신 때문에 계약직 자리로 온다고?그 순간 이연은 비참했다. 한때 우경의 왼쪽 가슴팍에 달린 법률을 의미하는 저울 달린 금배지를 자신이 달고 있을 줄 알았으니.우경은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감정일 텐데 구질구질하게 설명하고 싶진 않았다.“좋은 자리 놔두고 차우경 씨가 왜 계약직 자리를 맡아요? 맞는 자리로 돌아가요.”이쯤이면 말뜻을 이해했겠지 싶어 이연이 등을 보였다. 하지만 등 뒤로 예상치 못한 다부진 말이 들려왔다.“안 될 건 뭐야. 나인 줄도 모르고 어젯밤 매달리던 너도 있는데.”“차우경 씨 그건….”“그게 답 아니야?”그때는 몰랐다. 그간의 결연한 마음도 우경 앞에서는 허물어지고 말 거라는 것을.
제일 먼저 리뷰를 달아보시겠어요? 첫 리뷰를 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