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다.
그에 비하면 악역의 엑스트라 아내에 빙의한 것쯤은 아주 쉬운 일일 것이다.
비록 그 악역이 미래에 나라를 비탄에 빠뜨리는 폭군 황제라고 해도.
비록 그 악역이 자신을 싫어한다고 해도.
비록 빙의한 몸의 아버지가 황제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고 해도.
이 결혼이 자신을 인질로 삼기 위한 비참한 결혼이라고 해도.
애초부터 사랑이 들어갈 자리가 없고, 고칠 생각조차 없을 차가운 부부 생활이 예정되어 있을지언정.
그래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다.
‘정말이지…….’
자신의 처지를 새삼 곱씹은 이브닝의 머리가 자연스럽게 하늘을 향했다.
‘해 볼 만한데?’
그녀는 긍정적인 사람이었다.
약혼 첫날부터 첫날밤이 마련될 줄은 상상도 못 했지만…….
* * *
“제가 너무… 주제넘은 착각을 하고 있었네요.”
그의 황후이자 가신으로서 일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니. 제 주제를 모르는 착각이었다.
자신의 입장을 확실히 깨달은 이브닝은 떨리는 손을 맞잡고 고개를 들었다. 자신의 모습이 비치는 맑은 푸른빛 눈동자에는 은근한 조롱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이브닝은 굴하지 않았다.
그녀는 전생의 가훈을 마음에 품고, 결연한 얼굴로 다짐했다.
“저는 당신의 아내가 아니에요. 저는…….”
이브닝은 그가 무어라 따지기 전에 잽싸게 결심을 전했다.
“폐하의 충실한 따까리랍니다.”
황후나 가신 같은 우아한 직책을 담당할 생각은 집어치웠다.
한없이 낮은 자세로 그의 따까리 노릇을 해야 간신히 호감을 살 수 있으리라.
천만다행으로 이브닝은 헌신적인 따까리 짓이 특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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