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덩이처럼 팔려 온 황녀.
적국의 전쟁 영웅, 에리히의 손에 떨어진 비앙카는 그저 아이를 낳기 위한 도구일 뿐이었다.
처음에는 분명히 그러했다.
조국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비앙카의 희망을 보란 듯 짓밟고,
온전히 제 흔적으로 망가뜨리고 싶어진 것은 그 에리히조차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하지만 여자는 날개 없는 저를 비웃듯 기만하며 나비처럼 달아나 버렸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에리히를 폐허처럼 무너트릴 수 있는 순간을 고대하기라도 했다는 듯이.
“아주 훌륭한 연극이었어. 까딱하면 나까지 속아 넘어갈 뻔했지. 어떻게, 그런 식으로 나한테서 달아나려고 했을까.”
다시 만난 여자는 새벽의 태양처럼 아스라하면서도 빌어먹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여전히, 혼자서 잘났다는 양.
“떠나요. 당신에게는 더 이상 들을 말도, 할 말도 없으니.”
“아니지, 비앙카.”
오랜만에 부인의 이름을 입에 담으면서, 에리히는 생각했다.
“당신에겐 아무런 권리가 없어. 관계를 끝낼 권리도, 내게서 도망칠 권리도, 이딴 식으로 나를 거부할 권리도.”
이제는 아무래도 괜찮다고.
“넌 여전히, 내 소유야.”
두 번 다시는 달아날 생각조차 하지 못하도록 날개를 찢어 버리면 될 일이라고.
“그러니 죽어도 내 곁에서 죽어.”
비앙카.
그 길지도 않은 이름이 제 인생을 집어삼킬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사랑 때문이었다는 사실도 알아차리지 못한 채로.
일러스트: 서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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