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이 뭐예요?”
“윤경서예요.”
“범재경입니다. 연락처 물어봐도 됩니까.”
짝사랑하는 남자에게서 동생을 유혹하라는 지시를 받은 윤경서. 그러나 생각과 달리 그녀가 유혹해야 하는 상대인 범재경은 너무나 쉽게 경서에게 빠져든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를 두고 진지한 만남까지 이야기하는 재경.
‘함부로 하지 않을 겁니다.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으니까.’
경서는 머릿속에 맴도는 잔상을 끄집어냈다. 범재경은 정말로 엄숙한 얼굴이었다. 제 말의 무게보다, 더욱 무겁고 단단했다. 그러나…. 경서는 그 말이 주는 무거움에 대해 길게 헤아리지 않았다. 그는 범재신의 동생이었다. 같은 범 씨였다. 배가 다르지도 않았다. 그 집안의 남자들은….
‘믿지 않을 거야. 나는 바보가 아니니까.’
***
‘사랑하지 않아.’
재경은 이제 윤경서를 사랑하지 않는다. 그가 잊지 못하는 것은, 그저 이따위 여자라도 순정을 바쳤던 그 자신이다. 눈먼 봉사처럼 이 여자에게 진심을 찾아 헤매던 그였다. 그런데…. 슬픔을 베어 무는 눈이었다. 용서하고 싶지 않다는 것처럼. 더러움이라고는 하나도 모르는 여자처럼. 티끌만 한 잘못도 저지르지 않은 순진한 여자의 얼굴로.
“하마터면 착각할 뻔했잖아.”
그가 비죽 웃었다. 그 날카로운 웃음에도 윤경서는 견고했다.
“갖다줘 버려.”
“…누구한테요.”
“누구든. 내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치워 버려.”
“당신 아이가 아니니까?”
경서는 자신을 집어삼킨 채 한 뼘, 한 뼘 씹어 먹을 것 같은 남자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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