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비서가 이런 데서 일하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
“…….”
“민채유 씨, 많이 가난해요? 여전히 그래?”
만인에게 다정하고 친절한, 리강호텔 대표 차서혁.
“가엾게.”
듣기 좋은 목소리도, 본심을 감춘 다정함도 없었다.
그는 채유의 앞에서만 쓰고 있던 좋은 사람 가면을 벗었다. 당연하다는 듯.
“주말에 제가 여기서 일하는 게 문제가 되나요?”
“자존심이 무너질수록 민채유 턱 끝은 올라가던데. 여전히 그러네.”
맑은 웃음소리가 종소리처럼 퍼졌다.
그는 꼭 그때처럼 웃었다. 담배를 물고 아이가 쌓아 올린 돌탑을 무너트렸을 때처럼.
들켰네, 하며 웃던 그 얼굴로 서혁이 채유를 쳐다보았다.
“내일도 꼭 출근해요, 민 비서. 자존심 상했다고 내빼지 말고. 이젠 어른이잖아.”
정말 끔찍할 정도로 그는 12년 전과 똑같았다.
***
“그냥 옷이잖아, 민채유. 이걸 입는 게 그렇게 어려워?”
“…….”
“그냥 가방이잖아. 가지고 다니라고! 어려운 거 아닌데 왜 어렵게 만들어?”
자신은 민채유에게 미래를 약속하지 못한다.
결혼 전까지 잠깐 만나고 말 사이.
가벼운 마음을 점점 무겁게 만드는 건 민채유였다.
“청승 떠는 거 보고 싶지 않아서 그래. 구질구질해. 구질구질한 민채유가 내 비서라 신경 쓰여.”
감정을 깊어지게 만드는 것도 민채유였고.
왜 오기 나게 만들어. 왜 점점 더 가지고 싶게 만드냐고.
“사실은 다 핑계고 너 어떻게 한번 하고 싶어서 사 온 거라면? 너랑 하고 싶어서 꼬리 흔드는 거라면 민채유 자존심 덜 상해?”
그래, 가엾고 안쓰러운 건 핑계고,
그냥 저 물건들 사다 안기면 도도한 공주님이 허락해 줄지도 모른다는 쓰레기 같은 계산이 있었을지도.
“저는 이런 거에 저 안 팔아요.”
“상사가 시키는 일은 더러워도 해야지. 사회생활이 원래 그런 거 아닌가? 더 기어오르지 말고 입고, 들고, 신어.”
명령조의 말에 채유가 침대 시트를 움켜쥐었다.
“기어오르지 말라고 했는데 대답 안 하네.”
“네. 입고, 들고, 신겠습니다.”
민채유를 안아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늘 가시를 세우던 이 여자를.
가시에 찔려 만신창이가 되어도 상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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