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금 피폐로맨스 판타지 소설에 빙의했다.
그것도 흑막에게 참혹하게 살해당하는 악녀이자 그의 아내로.
내가 살 수 있는 방법은 하나였다.
‘선빵필승, 내가 먼저 흑막을 처리한다.’
그래서 우선 그를 구워삶으려고 부단히도 노력했다. 이제 겸상까지 할 수 있는 사이가 됐으니 혹시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건 아닐까…….
그렇게 생각했다. 어리석게도.
“그래. 약속대로 이네스를 죽일 날이 두 달도 채 남지 않았다지?”
“예, 그렇긴 합니다만……. 주인님, 외람되지만 꼭 마님을…….”
“더 이상 말을 얹지 마라, 디트리히. 난 그저 시킨 일을 할 뿐이야.”
그래서 그를 계단에서 밀었다. 어째서인지 그가 너무 쉽게 넘어가 주었으나 그런 것까지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그렇게 그를 죽인 줄 알았다. 하지만 괜히 소설 속 흑막이 아닌지, 어찌저찌 잘 굴러떨어져 목숨은 보전했다.
아니, 정확히는 목숨만 보전했다.
“부인.”
단 한 번도 날 이런 눈빛으로 바라본 적이 없었는데.
“말도 안 됩니다. 내가 이토록 사랑스러운 당신을 무시하고 멸시했단 말입니까?”
날 사람 취급해 준 적조차 없었는데.
그가 입술에 호선을 그리며 여유롭게 웃었다.
“미치지 않고서야, 내가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리 없습니다.”
아무래도 내 흑막이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 같다.
***
평화로운 나날이었다.
그래, 매일 이런 나날만 이어졌으면 했는데.
어느 날 문을 열었을 때, 날 보며 미소 짓는 네가 아닌 낯선 당신이 앉아 있었다.
“나 다 기억났어. 이네스.”
형형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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