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잃은 오필리아에게 남은 세상은 오로지 헤미안뿐이었다.
오랜 소꿉친구이자 온 마음을 다했던 첫사랑.
하지만 찬란했던 사랑은 금세 빛을 잃었다.
“배, 백작니임…….”
“로라, 하아, 왜 그래?”
“부인께 죄송해서…….”
더 이상 그녀가 알던 헤미안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오필리아는 마침내 해묵은 사랑에 이별을 고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오만한 비웃음뿐이었다.
“그 잘난 이혼장 가져가서 어디 한번 법원에 제출해 봐. 너는 날 절대 못 떠나.”
오필리아는 왼손 약지에서 결혼반지를 빼내었다.
혼인 후 항상 착용했던 반지. 그것을 잠시 물끄러미 보다가 서랍 안에 넣고, 닫았다.
……잘 있어, 헤미안.
***
낯선 곳에서 새로운 삶을 꾸리고자, 대필소에서 일을 시작하며 쓴 연애 대필 편지.
그게 화근이 되었다.
“공작저에서 서기관으로 일해 보는 건 어떻습니까?”
제국에서 유일한 공작가이자,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칩거 공작’이라 불리는 윈체스 가문의 가주.
오필리아는 세드릭 윈체스의 예상치 못한 제안을 받게 되는데.
“이건 계약서입니다. 마음을 정하면 언제든 방문하시면 됩니다.”
그는 용건이 모두 끝났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찻잔 속의 차가 미처 식기도 전이었다.
***
오필리아가 정원을 가로질러 나가는 모습을, 세드릭은 창문 너머로 잠시 응시했다.
그러다가 이내 실소를 터뜨렸다.
‘일이 이렇게 될 줄이야.’
텅 비어 있던 왼손 약지를 똑똑히 기억하는 그는 미소를 지었다.
“이혼이라…….”
그녀가 다시 혼자가 된 이상, 기회를 놓칠 생각 따위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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