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황

사황 완결

<사황>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

결코 삶에 미련이 있어서도 아니며, 이제 와서 구차한 참회의 눈물로 악인(惡人)의 탈을 벗어 보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음습한 어둠만이 존재하는 이 밀폐된 공간에서 탈출할 수 있는 통로는 어차피 죽음 뿐. 이미 버릴 것은 다 버렸다. 젊은날 청조각(靑照閣)의 오십구인(五十九人) 비구니들을 능욕(凌辱)하며 맛보았던 그 짜릿함이며, 이후 악마행(惡魔行)으로 시종일관된 오십여 년, 심지어 무림공적(武林公敵)으로 쫓기다 제발로 걸어들어와 이곳에 감금된 십 년의 세월까지도…….

버러지같은 인생, 참으로 오래도 살았다. 이제 떨칠 수 없는, 아니 떨궈서는 안될 일을 마지막으로 처리해야겠다. 복수(復讐)라고 하면 악인에게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르지. 그저 저승의 동반자가 필요하다고 말할까? 비밀을……

오늘은 꼭 그를 만나서 무덤까지 품고 가기로 했던 그 비밀을 알려야겠다. 보이지 않아도 익숙한 바닥이다. 오래 전에 생기(生氣)를 잃은 손은 바닥을 기기에도 힘들고, 썩어빠진 육신은 칠흑덩이처럼 무겁다. 불로 지지듯 손가락 끝이 아픈 것은 손톱이 빠져서일 것이다. 문(門)은 멀지 않다. 그러나 문까지의 거리는 근 오십여 년 넘도록 걸어왔던 그 긴 인생역정(人生歷程)보다 더 길게만 느껴진다. 남의 것처럼 감각을 잃어버린 팔을 들어서 필시 문이라고 생각되는 지점을 두드렸다. 쿵! 쿵! 자지러지게 놀란 철문(鐵門)이 둔중한 비명을 터뜨렸다. 그는 폐(肺)가 찢어질 것 같은 숨가쁨 속에서 고함을 쳤다.

"제발! 그 분을 불러 주시오!"
"잘 알다시피……."

차가운 청석(靑石) 바닥이 그나마 정신을 일깨웠다. 마치 게으른 개처럼 엎드린 노인(老人), 그의 뺨은 바닥에 밀착되어 있었다. 금방이라도 부스러질 것처럼 하얗게 센 백발머리가 보이는 까닭은 한 치 가량 벌어진 문 틈으로 들어오는 희미한 광망(光芒) 때문이었다. 그리고 노인의 얼굴이 확인되지 않는 것은 풀어진 실타래 같은 산발한 머리카락 때문이었다.

"지난 팔십 년 간 강호에서 발생했던 악사(惡事) 중 구할(九割)은 노부가 자행한 일이외다."

노인의 머리맡에 버티고 서 있는 두 발의 임자에게서는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잘 지은 가죽 신발은 흙 한점 묻지 않았으며, 신발 콧등에 황금색 수실로 용수(龍繡)를 놓아두고 있었다. 용을 수놓은 가죽신발은 오직 황족(皇族)들만이 신을 수 있고, 황족들 사이에서도 용의 숫자로 서열(序列)을 삼는다. 황제의 형제들이나, 황제의 숙부들인 황숙(皇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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