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은 그런 만신창이가 된 표지판을 보고서 그렇게 코웃음을 쳤다. 그에게 있어서 그 표지판이란 해풍이라는 거대한 상대로 싸워 온 투쟁의 역사가 아닌, 단지 구청 직원의 게으름의 부산물 정도 밖에 다가오지 않는 것이다. 청년은 이내 그런 표지판의 얼굴을 머릿속에서 지워 버리고는 자신을 둘러 싼 이곳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바다는 공허하게, 무의미 하게 철썩 거리면서 해안가의 모래들을 적시며 자신의 영토를 주장하고 있었고, 해풍이 깎아놓은 바위 절벽들은, 지켜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묘한 경외심을 갖게 할 정도로 험준하고 거대했다. 절벽은 피아노 건반처럼 깎여있었고, 그 위로는 나무들이 뿌리를 내리고 거주하고 있었다. 이런 해풍이 계속된다면, 나무에겐 매 순간이 삶을 유지하기 위한 투쟁의 연속일 것이다. 하지만 절벽은, 해풍과 나무뿌리에 유린당하면서도 항변할 입 따위 없었다. 나무는 살기 위하여 그 절벽을 자신의 뿌리로 유린 하지만, 그것이 도리어 자신이 거주할 곳을 깎아 먹으며, 스스로를 죽이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할 것이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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