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게 가는 길 [단행본]

그에게 가는 길 완결

그 날이라고 특별한 것은 아니다. 책 한 권을 들고 신촌역에서 내려 그녀가 지정한 커피숍으로 가는 길 내내 햇살은 더없이 따뜻하고 바쁜 사람들의 걸음과 젊음이 가득한 소리가 어우러진 틈새를 나는 또한 더없이 느긋하게 걸어갈 뿐이니까. 익숙한 통로, 홍익서점을 흘깃 바라보며 내려서는 이 길. 취해 비틀거린 시간도 많았고, 늘어진 친구를 원망하던 거리도 길었던 곳. 그래서 너무나 익숙한 곳이라서 걸음마저 느려졌는지도 모른다. 큰 창과 작게 내려온 흰색 블라인드가 깔끔하게 어울린 그 곳에 들어서면 화사한 봄 꽃 같은 새내기들이 가득하다. 한 번 보아도 알 수 있는 그 어설픈 눈빛들. 절로 가벼운 웃음을 짓게 하는 그 비릿한 몸짓들이 꽃처럼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내가 학생이 아닌 사회인이기 때문일지 모른다. 약속시간 15분 전. 이것은 나의 습관이다. 거의 대부분 약속 시간 15분전쯤 도착해서 약속 시간 15분이 지나면 미련 없이 일어서는. 그래서 친구녀석들이 늘 투덜거리던 말이 '칸트의 꼬랑지'였다. 또 어떤 녀석은 지극히 현실적이라며 '실존주의의 형이하학화'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그렇지만 나에게 니이체를 들먹거리는 것을 나는 지극히 혐오한다. 기왕이면 나는 니이체보다 키에르케고르에 가깝고 싶으니까. 나는 너무나 인간적이고 싶으니까. "리필 해드릴까요?" 책에서 눈을 떼고 올려다보니 귀여운 얼굴이 웃고 있다. "네, 부탁 드립니다." "네" 아르바이트라고 쓰인 명찰이 지금 그녀는 자랑스러울지도 모른다. 그것도 경쟁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전리품과 같으니까. 얻고 싶어도 얻을 수 없는 사람이 훨씬 많을 것이란 나만의 생각에서는. "여기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고개를 숙이며 지나가는 그녀의 귀밑머리가 정갈하다. 나는 약간 흐트러진 모습이 좋은데...... 시계를 본다. 약속 시간 20분이 지났다. 일어서야 할 시간이다. 그러나 오늘은 일어서고 싶지 않다. 리필된 커피도 마셔야 하고, 무엇보다 이 따뜻한 봄 햇살이 들어오는 자리가 너무나 좋다. 새내기들의 새 같은 지저귐이 좋고, 아직도 삼분지 일은 비어있는 공간의 여유가 좋고, 그리고 아직도 읽어야 할 책의 내용이 많이 남아있으니까. 책으로 시선을 돌리고 밀림 같은 글자를 헤치고 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어디에 있는지, 무엇 때문에 여기 왔는지를 잊어버리게 된다. 더불어 시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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