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해볼래? [단행본]

한번 해볼래?

'저녁 먹을 거니까 준비해.'
“뭣이라? 세상에 이런 경우가 어딨어? 오늘은 니들이 알아서 하고, 난 내일부터여야 하는 건데.”
잘난체하려다 폭삭 망한 거였다. 빛나는 아이디어라고 스스로 우쭐하며 다 저녁에 호텔로 당당히 들어온 것은 그녀 자신의 의지였다. 누굴 탓하리요.
'뭐라고?'
“오우, 빌어먹을. 노 프라블럼. 제기랄, 잇쯔 오케이.”
에이, 씨. 매순간 영어로 말을 해야 하다니 죽을 맛이다. 문장을 생각할 시간이라곤 개뿔도 없어 그저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해 버렸다. 알아듣겠지. 모르면 그만이고. 
사실 중요한 부분을 그가 못 알아듣는다는 것이 은근히 즐거웠다. 그냥 억지웃음으로 표정관리만 한다면 하극상해도 모른단 말이지. 쿡쿡.
'어디로 갈 거지?'
“네? 아, 음, 그러니까 어디로 갈 거냐 하면, 며, 명동. 유 노우 명동? 잇 이즈 더 온리 플레이스 아이 노우.”
'어째서? 서울에 살지 않나?'
“음. 대답하기 어렵게 자꾸 묻네. 그래요, 나 서울 촌년이에요. 어디 돌아다닐 일이 있었어야 말이지. 어후, 아이 리브 인 서울. 벗 아이 돈 노우 아더 플레이스.”
명동 대성당에서 미사를 지내며 예수님이 나누어 주시는 떡과 포도주를 먹자고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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