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혈 [단행본]

비정혈

쏴아아아…… 쏴아아……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이 비는 가을밤의 정취(情趣)를 물씬 풍겨내며 쏟아져 내리는 야우(夜雨)였다. 그러나, 공룡(恐龍)의 앙상한 뼈마냥 버려진 거대한 폐성(廢城)의 땅 위로 쏟아져 내리는 이 비는 결코 정취가 있을 수 없었다. 거대한 폐성 곳곳엔 고루거각(高樓巨閣)과 가산(假山) 인공연못 등의 잔재가 남아 있어 한때 부귀영화(富貴榮華)를 누렸음을 한 눈에 알아보게 하였다. 하지만 지금은 잡초만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검게 타다 남은 보기 흉한 골격만이 뎅그라니 버려진 채 그 무상(無常)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사위는 깊은 어둠과 적막에 잠겨 있는 야심한 시각, 휘날리는 빗줄기는 황폐한 폐성의 바닥을 두들기며 튀어오르고 있었다. 한데 이 폐성의 정적(靜寂)을 깨는 소리가 있었다. 마치 한 밤의 얼굴없는 사자(死者)의 행진처럼 들려오는 그 소리는 비먹은 땅을 밟는 발걸음 소리였다. 절벅…절벅… 이미 오년(五年) 전에 폐허로 변해 버린 이 죽음의 땅 위를 누가 찿아왔단 말인가? 쏴아아아……휘이잉…… 빗소리와 바람소리에 어우러진 발걸음 소리는 마치 그 날의 참혹했던 현장의 비명소리처럼 을씨년스럽게 밤의 정적을 깨고 있었다. 그러던 한 순간 발걸음 소리는 문득 멈추었다. 그것은 하나의 거대한 무덤 앞이었다. 돌보는 이 없는 무덤인지라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그러나, 흐릿한 번개의 은빛 빛줄기 속에서 드러나는 하나의 석비(石碑)는 잡초 속에서 분명히 보였다. -切劍塚(절검총)! 절검(切劍)이라 함은 검을 부러뜨림을 말함이요, 총(塚)이라 함은 무덤이다. 곧 이 말인 즉 이 무덤이 부러진 검들의 무덤이란 뜻이다. 그럼 무덤 속에는 부러진 검이 묻혀있단 말인가? 검의 무덤치고는 엄청날 정도로 큰 무덤이 아닐 수 없었다. 쏴아아아…… 쏴아아…… 쏟아져 내리는 빗줄기 따위는 아랑곳없이 무덤 앞에 고요히 서 있는 한 사람이 있었다. 그의 일신에서 자욱하게 피어나는 것은 비애(悲哀)의 기운이었다. 마치 굳어진 석상처럼 서 있는 그는 검은 흑의(黑衣)를 입고 있었다. 거기에 신발 역시 검은 흑단화(黑短靴)였다. 검은 흑발(黑髮)은 삼단처럼 풀어헤쳐져 바닥까지 끌리고 있었으며 바람이 불 때마다 파도처럼 출렁였다. 후리후리한 몸매에 창백한 피부지만 드러난 이목구비는 정교한 세공품처럼 수려했다. 마치 여인처럼 아름다운 사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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