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깊은 도로에는 짙은 안개와 함께 비가 내리고 있었다. 열어 놓은 차창으로 들어오는 11월의 밤바람은 차가웠다. 도로 양옆 어느 쪽으로도 불빛하나 밝혀져 있지 않았다. 맞은편 쪽에서부터 이따금씩 달려오는 헤드라이트의 분사로 들녘을 낀 골짜구니를 가로지르는 2차선 도로가 희뜩희뜩 그모습을 생각난 듯 드러낼 뿐이었다. 영준은 옆좌석에 말없이 앉아 있는 아내 세화의 낮은 숨결을 피하듯 FM의 스위치를 맞췄다. 에디뜨 삐아프의 측축한 노래가 차 안을 금방 가득메웠다. 시계는 9시를 이미 넘어서 9시 27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지형이 점점높아지는지 고막이 쨍해지며 한기가 강하게 엄습해 왔다. 들이치는 빗발도 만만치가 않았다. 영준은 천천히 운전석 옆의 창유리를 올려 닫았다. 그와 함께 속도감에서 오는 압력과 바람과의 마찰음으로 어지럽던 소음이 한꺼번에 차단되며 에디뜨 삐아프의 흐느낌이 한층 강한 정감으로 가슴에 와 닿았다. 영준은 액셀레이터를 밟은 발에 힘을 가했다. 80에서 85 사이를 오르락거리던 계기침이 90으로 쓱 올라섰다. "차…… 속도를 좀 줄이는 게 좋겠어요." 세화가 영준을 조심스레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왜, 사고날까봐 겁나?" 영준이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밤이 늦은데다 비는 오고, 도로도 심하게 구불거리고 해서……." "걱정 마. 죽기밖에 더 하겠어." 영준이 픽 웃음을 흘리며 액셀을 밟은 발에 힘을 더욱 가했다. 계기침이 바르르 떨 듯이 고동치며 100을 넘어서더니 이내 110으로 올라갔다. 흰 이만 드러내 웃는 그의 표정 없는 얼굴이 싸늘한 데드 마스크와도 같았다. 세화는 알 수 없는 예감과 함께 오싹 전율을 느꼈다. "무슨 말을 그렇게……." 세화가 정색을 하며 영준을 쳐다보았다. "당신은 나와 함께 죽는다면 억울하겠지…… 허지만 난 상관없어." 어느샌가 웃음기를 거둔 영준은 진심으로 말하고 있었다. "여보, 제발 그러지 말아요." 세화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애원하듯 말했다. 영준은 대꾸 없이앞만 똑바로 쳐다보며 등을 곧추 세웠다. 뒷골이 뻐개지는 듯한 통증과 함께 목이 뻣뻣해 왔다. 1주일 가깝게 신경을 바짝 세운 채 잠 한숨 제대로자지 못했던 때문일 것이다. 1주일씩이나 끙끙대다니 내 머리도 별것 아냐! 아니, 아니지. 비 때문이지. 비가 와야 했으니까. 영준은 어깨를 주욱 폈다. 가늘고 예리한 눈 끝에 자신감이 번뜩 지나갔다. 어디쯤 왔을까 생각하며 그는 밖을 내다보았다. 그러나 차창 밖은 칠흑같은 어둠뿐 위치를 쉽게 가늠할 수가 없었다. 저녁을 먹고 수안보 온천을 출발한 것이 8시 30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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