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봉제공장의 노동쟁의가 사흘째 계속되던 날 밤에 그녀는 죽었다. 그 여자의 죽음으로 인하여 노동쟁의는 새로운 국면에 들어갔고, 그 여자의 죽음이 자살이나 자연사가 아닌 타살이라는 사실로 해서 경찰의 수사가 시작되었다. 나는 사회부 데스크의 지시를 받고 그 봉제공장이 있는 소도시로 내려갔다. 그곳은 아담한 호반의 도시로 서울처럼 붐비지 않는 전원적인 분위기를 아직도 유지하고 있는 작은 도시였다. 한성공장은 그 도시의 서쪽에 있는 호수를 끼고 산비탈 아래 한갓진 의곽에 자리잡고 있었다. 3백여 명의 여공들과 20여 명의 남자 공원, 그리고 20여 명의 남녀 사무직 직원으로 구성되어 있는 중소기업이었다. 내가 살인 현장인 그 회사의 기숙사 제25호실에 갔을 때는 현장은 이미 지워지고 텅빈 방이 보일 뿐이었다. 두 평 정도의 작은 방은 깨끗이 치워져 있었다. 그 방에 살해된 여공과 함께 있던 다른 여자들도 다른 방으로 옮긴 후였다. 다른 방을 들여다보니 방의 크기와 구조는 같았으나, 조그만 책상 다섯 개가 벽 쪽에 나란히 있었다. 두 평의 작은 방을 다섯 명의 여자들이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책상은 조그만 찻상처럼 앙증맞게 작았다. 그 위에 주간지가 올려 있기도 하고, 여성지도 눈에 띄었다. 나는 한성회사 공장장의 안내를 받으며 기숙사를 비롯한 공장 안을 둘러보았다. 공장장은 50세 정도의 중년으로 머리가 벗겨지고 아랫배가 나와 있었다. 그의 눈빛은 이상하리만큼 번쩍이고 있었다. 그의 모습과는 달리 친절했다. 살인사건을 수사하는 경찰이며 기자들을 많이만나고 안내해 본 듯이 그의 태도는 흐트러짐 없이 정연했다. 그는 자신이 사장의 동생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우리 형님인 홍사장으로 말할 것 같으면 그 누구보다도 노동자들의 복지를 위해 노력하고 임금도 만족할 만큼 인상시켜 주었는데, 직공 내부에 위장 취업을 한 불순분자로 말미암아 파업지경에 이르렀다고 불평을 하였다. 농성하는 여공 3백명은 공장 안의 재봉틀이며 재단기들을 베고 누워 있었다. 그녀들의 모습은 지쳐 있었다. 내가 공장장과 함께 공장 안을 기웃거리자 머리에 붉은 띠를 매고 있던 10여명의 여공들이 갑자기 원기를 찾으며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내가 기자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 수십 명이 입을 모아 소리쳤다. "기자 아저씨, 우리를 외면하지 마세요." "기자 아저씨, 우리를 보세요." 나는 웬지 얼굴이 달아오르며 거북해졌다. 나의 얼굴이 달아오른 것은 그녀들의 말처럼 그 동안 기자인 내가 외면만 하고 시선을 돌린 기분이었다. 나는 사회부 기자로 여공의 살인사건을 취재하러 왔지만, 그것에 앞서 그녀들의 외침에 귀를 기울여야 했다. 무엇을 보라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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