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비가 내리는 어느 여름날, 대학생 희재는 번화가에서 우산 없는 사탄을 만났다.
“당신, 누구예요? 누군데 자꾸 신부님 행세를 하고 다녀요?”
“왜? 궁금해? 내가 누군지?”
그는 희재가 다니는 성당의 신부님인 유진과 모든 게 똑같았다. 얼굴, 키, 심지어 목소리까지.
“사탄이야, 나는.”
그는 짓궂었다.
“그럼 난 간다. 오늘도 자기 전에 기도 열심히 하고 주무시고. 그럼 꿈에 유 신부가 홀딱 벗고 나타나 줄지도 모르잖아.”
그는 무례했다.
“종교, 그거 나약한 사람들의 도피처 같은 거 아닌가?”
그는 불경스러웠다.
“난 그런 거 알려줄 엄마가 없어서.”
또, 그는 서러웠다.
“토마토? 크림?”
“크림이요.”
“베이컨 좋아해?”
“네. 좋아해요.”
“버섯은?”
“좋아해요.”
“브로콜리는?”
“좋아해요.”
“나는?”
“좋아해요.”
“아, 그렇구나.”
“……네? 방금 뭐 물으셨죠?”
“됐어. 난 이미 대답을 들어버렸어. 낙장불입, 알지?”
그리고 희재는, 그런 배덕한 그가 자꾸만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리뷰를 달아보시겠어요? 첫 리뷰를 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