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도 모른 채, 마을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할 뻔한 화령.
그녀는 사명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하게 되고, 그의 저택에 머물게 되는데….
서서히 가까워지는 발소리에 목구멍이 턱, 막혀 왔다. 화령은 두 다리를 모으고 몸을 잔뜩 웅크렸다. 그가 자신을 발견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가기만을 바랐다. 하지만 그는 야속하게도 그녀가 숨어 있는 곳에 멈추어 섰다.
“저런.”
사내의 목소리가 머리 위로 떨어졌다. 안쓰러운 척 혀를 차고 있지만, 그의 음성엔 은근한 웃음기가 배어 있었다. 화령은 낭패라는 듯 인상을 썼다. 열 오른 뺨을 감싸 쥐는 손길에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커다란 몸을 굽히고 앉은 그가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분명 방에서 나오지 말라 하였는데.”
화를 내면 어쩌나 싶었는데, 사내의 어투는 평소처럼 상냥했다. 차가운 체온이 열을 상쇄시키고 있었다. 그녀는 서늘한 그의 손바닥에 얼굴을 비볐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열이 전신으로 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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